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연설에서 사회적 공론화를 촉구한 양극화 해소와 관련,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않았다. 사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신년 연설에서 불거진 ‘증세 논쟁’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과 양극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관심이 쏠렸었다.
노 대통령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급적 세금을 올리지 않고서 양극화 재원을 마련하겠고 국민이 반대한다면 세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를 뒤집어보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면 세금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노 대통령은 “세금을 당장 올리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양극화의 심각성과 그 재원 마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될 때까지는 증세나 국채발행과 같은 ‘무리수’를 꺼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병완 비서실장도 ‘참여정부 임기 내에는 증세하지 않을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대통령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봐달라”면서 “국민의 동의가 없으면 세금인상은 불가한 것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노 대통령이 ‘증세 논쟁’을 ‘감세 논쟁’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 것도 양극화 해법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오히려 지금은 증세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 감세의 타당성을 따져봐야 한다”며 “기초연금 등 돈 쓸 일은 끝없이 내놓으면서 세금을 깎자는 주장의 타당성과 책임성을 따져보지 않으면 어렵게 꾸려나가는 지금의 재정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한나라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도 “이제는 감세 논쟁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 해법을 둘러싼 논쟁이 제2라운드로 물꼬가 터졌으면 하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번 기자회견으로 일단 증세 논쟁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증세 카드를 완전히 접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노 대통령은 재원 마련 대안으로 ▦조세감면제도의 축소 ▦세원 발굴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 방지 ▦예산 집행의 효율성 제고 등을 꼽았으나 쥐어짜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감세 논쟁으로 방향전환을 촉구한 것도 결국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일단 지방선거 후로 예상되는 ‘미래구상’ 발표에서 다시 한번 양극화ㆍ미래 과제에 대한 공론화를 촉구한 뒤 국민과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화두로 던진 양극화ㆍ미래구상이 공론화에 성공한다면 레임덕 방지 효과도 부수적으로 거둔다는 점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정치권의 결단 촉구시기가 탈당 시기와 맞물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집권 4년차를 맞아 노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노 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 국민적 합의를 유독 강조했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류의 민심과 표피의 민심은 다르다’고 전제하면서 ‘대통령이 민심을 꼭 따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던 노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에 비해 진일보한 것임에 틀림없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때로는 어려움에 부닥치는 선택을 회피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균형점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