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동량이 지난 4월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지난주에 바이어가 상당한 물량의 발주를 돌연 취소했습니다. 개성공단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것 같다면서요." (개성공단 입주기업 A대표)
개성공단이 166일 만에 재가동된 지 어느덧 한달이 흘렀으나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의 시름은 여전히 깊어만 가고 있다. 장기간 가동중단에 따른 후유증으로 가동률이 30~40%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성공단이 과거의 활력을 되찾지 못하는 것은 개성공단 리스크를 톡톡히 경험한 국내외 바이어들이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이미 가동중단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당장 1,761억원의 경협보험금을 갚아야 해 자금압박이 극에 달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입주기업인들은 "이렇게 가다가는 개성공단이 슬럼화하는 것 아니냐"며 입술이 타들어가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5일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에 따르면 통일부는 지난달 재가동 이후 입주기업 123개 중 118개사가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상당수 기계ㆍ전자부품 업체들은 사전주문 물량이 없어 가동을 늦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입주기업 B대표는 "통일부는 재가동 직후 생산 물동량이 55~60% 수준을 보이다가 순차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재가동을 미룬 업체들까지 합치면 지금도 30~40%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하거나 축소하고 있어 생산 물동량 회복이 지연되는데다 직원들의 사기도 바닥을 쳐 입주사 대표들의 근심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정이 이렇자 이날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계ㆍ전자부품소재 기업인 40여명은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정상화촉구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우리 정부와 북측 당국이 개성공단 발전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심어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부품소재 기업 45곳은 현재까지 가동률이 47%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개성공단이 재가동됐지만 불확실성 증가로 이탈했던 바이어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남북 합의사항들을 이른 시일 내 이행하고 개성공단이 안정된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설상가상으로 경협보험금 상환 독촉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입주기업 A대표는 "갚아야 할 대출금은 쌓여 있는데 수출입은행에서 경협보험금부터 토해내라고 독촉하니 살길이 막막하다"고 호소한 뒤 "대통령이 직접 경협보험금 상환기간 연장이 불가하다고 할 정도로 이 정부가 개성공단의 가치를 하찮게 보는데 어느 바이어가 믿고 주문을 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앞서 수출입은행은 수차례 남북협력사업부장 명의의 공문을 통해 이날까지 경협보험금을 수령한 59개 기업에 보험금(총 1,761억원)을 반환하고 이를 어길 경우 연체기간별로 최대 9%의 연체금 부과, 통행제한, 재산처분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통보한 바 있다. A대표는 "입주기업들의 요구는 보험금을 상환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금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상환기한을 미뤄달라는 것뿐"이라며 "기업들이 수년간 수은에 100억원 이상의 보험료를 낸 것은 이 같은 보험사고 발생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반대급부가 없다면 왜 보험을 들었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