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원산지制 시행 미리 대비해야

정재완 <한국관세포럼회장>

브라질에서 생산된 커피 원두를 칠레로 수입해 볶은 커피로 가공한 다음 다시 우리나라로 수입할 때 이 볶은 커피는 브라질산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칠레산으로 봐야 하나. 우리나라의 원산지 판정기준에 따르면 이 경우 브라질산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같은 사례에서 볶은 커피를 칠레산으로 보는 기준을 가진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와 칠레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으므로 볶은 커피를 칠레산으로 보면 올해에는 5.3%의 관세율이 적용되지만 해마다 관세율이 낮아져 오는 2009년부터 무관세가 적용된다. 그러나 브라질산으로 보면 계속해 8%의 관세율이 적용돼야 한다. 생산국별 관세율 천양지차 수입물품에 관세의 특혜 부여를 골자로 하는 FTA는 반드시 원산지의 판정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수반한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FTA를 체결하는 나라가 늘어날수록 정부와 기업간,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와 상대국 정부간에 원산지 판정과 관련된 마찰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FTA를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서 반입되는 물품은 민족 내부간 거래로 보아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남북교역이 확대될 경우에도 역시 원산지 판정과 관련한 마찰이 국내외에서 적지않게 발생할 것이다. 국내 기업이 개성공단에서 생산해 남쪽으로 반입한 물품을 수출할 경우 이를 한국산으로 볼 것이냐, 북한산으로 볼 것이냐는 그 물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물품을 수입하는 나라의 정부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질 사안이다. 과세문제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든 커피의 경우는 볶음이라는 공정을 생산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 쟁점인 비교적 간단한 사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직접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전자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의 경우는 보다 복잡한 사안들이 쟁점이 된다. 현지국에서 일정수준 이상, 예를 들어 40%~60% 이상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경우에만 현지국 생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 품목명이 바뀔 정도로 일정한 가공이 수행됐으면 현지국 생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가공공정이 수행됐더라도 특정한 중요 부품이 현지에서 공급될 경우에만 현지국 생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 등이 서로 대립되고 있는 것이다. 원산지 판정에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제품의 생산방법, 무역, 마케팅 등은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같은 물품이 국제간에 거래될지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나라에서 생산됐는지에 따라 관세부과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고 비관세적인 무역관리를 차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원산지 표시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심리가 영향을 받는 것은 수입 농수산물과 관련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바이다. 사실 원산지의 판정문제는 국제사회의 껄끄러운 이슈 가운데 하나이다. 기업의 국제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최종 협상타결 곧 이뤄질듯 영향이 큰 만큼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므로 국제적으로 원산지에 관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올해로서 만 10년째 통일원산지규정 제정과 관련된 협상을 난항 속에 계속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협상의 최종 시한을 연말까지로 잡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최종적인 타결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WTO 회원국들에는 통일된 원산지규정이 법적효력을 갖고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직접투자업체를 비롯해 무역업체들이 원산지제도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미리 주의깊게 대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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