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경기 회복세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렸다. 반면 벤 버냉키(사진) FRB 의장은 양적완화(QE3) 카드가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는 '립서비스'로 시장을 안심시켰다. FRB가 경기와 시장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FRB는 25일(현지시간)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발표한 2.2~2.7%에서 2.4~2.9%로 상향조정했다. 그러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7~3.1%로 종전 전망치인 2.8~3.2%보다 소폭 낮췄고 오는 2014년 전망치도 종전 3.3~4.0%에서 3.1~3.6%로 내렸다. 이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증세, 정부지출 축소 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 시기도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했다. 17명의 FOMC 위원 가운데 2014년 금리인상을 전망한 위원은 7명으로 종전보다 2명 늘었다. 반면 2016년 인상 전망은 종전 2명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한 명도 없었다. 2014년 금리수준에 대해서도 2~3%가 타당하다는 위원이 7명으로 종전 5명보다 2명 늘었다.
이에 앞서 나온 FOMC의 성명문 역시 "미국 경제는 향후 몇 분기에 걸쳐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3월보다 한결 낙관적으로 돌아섰다. 실제 미국 경기는 3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8% 증가하는 등 가계소비지출이 활기를 띠고 실업률은 8.2%로 낮아져 완만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FOMC는 유럽발 위기에 따른 전세계 금융시장의 압박이 하방 리스크가 되고 있으며 휘발유 값 상승세가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FRB의 올해 경기전망 상향과 지난번보다 구체적으로 성장전망을 제시한 FOMC 성명문을 감안할 때 FRB가 보다 매파적으로 돌아서고 추가적인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는 시장의 반응이 나올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가진 버냉키 의장이 분위기를 바꿨다. 그는 필요할 경우 제3차 양적완화(QE3) 등 추가 경기부양책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며 시장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미 경제가 추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면 추가 자산 매입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우호적인 발언은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 0.69%, 스텐더드앤드푸어스지수 1.36%, 나스닥지수 2.3% 등 3대 지수를 일제히 상승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장에서는 FRB가 경제가 자생적으로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유럽사태의 악화 등으로 경제가 위축될 경우 적극적인 개입을 단행할 것이라는 점을 버냉키 의장이 표명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심어줬다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일부에서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립 서비스에 그칠 것이라는 경계감도 나타냈다. 헤지펀드인 스카이브릿지캐피털의 설립자인 앤서니 스카라무치는 "버냉키 의장이 마치 시장을 띄우려고 작정한 것처럼 얘기했다"며 "이는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는 앞으로 돌발적인 상황전개가 없다면 FRB가 지금처럼 실탄을 아낀 채 관망하는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미 제로금리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경기부양 수단은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긴축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작은 조치를 취할 경우에도 시장에서는 FRB의 중대한 정책변화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FRB의 운신의 폭이 무척이나 좁아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