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입을 가리고....

요즘엔 잘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옛날 국회의원들은 귀속말을 좋아했다. 귀에 대고 또 그것도 모자라 손으로 가리고는 말을 주고 받는 광경이 TV에 자주 비치곤 했다.또 아주 옛날 이야기이지만 정부의 주요기관에서 대미(對美)관계 회의를 열면 미국측은 즉각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것까지 회의내용을 소상하게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내부 제보자의 소행이라하여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으나 알고보니 미측이 도·감청했더라는 것이다. 통신의 도·감청은 이젠 국가간의 일상사가 되고 있다. 우방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는다. 통신 비밀을 지키려는 기술과 깨려는 기술이 한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간첩이 잡히면 난수표가 증거물로 제시된다. 난수표는 암호책이다. 그러나 해독되지 않는 암호는 없다. 암호조차도 통신의 비밀을 보장하는 최후의 수단이 못된다. 미국은 암호의 최선진국이다. 일본군의 암호를 개전(開戰) 전에 전부 해독하여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실적도 있거니와 컴퓨터 시대인 오늘에도 암호를 해독하는 기술과 해독할 수 없는 암호의 개발기술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나라이다. 그 미국이 암호기술의 수출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전자상거래의 확대에 따라 고난도의 암호에 대한 수요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난도의 암호기술이 개방되면 테러나 범죄조직도 그 암호를 쓸 수 있게 된다. 공안당국이 범죄조직의 암호를 풀지 못하는 사태도 예견된다는 것이다.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말하건, 귀속말을 주고 받건, 또 전화 무선 혹은 컴퓨터로 통신하건 간에 이 세상은 통신없이는 존립되지 않는다. 또 이 세상엔 개인의 자잘구레한 비밀에서부터 국가의 중대한 기밀에 이르기까지 남이 알아서는 안되는 통신의 비밀이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그럴수록 그 비밀을 알아내야 하는 필요성과 절제 없는 호기심이 동시에 발동한다. 인간사(人間事)는 야구가 아니니 딱하다. 정태성언론인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