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3일] 경기고 개교

‘K1 전성시대, K1을 아십니까.’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도 상륙, 관심을 끌고 있는 이종격투기 대회를 말하는 게 아니다. K1은 경기고등학교를 지칭하는 관가 은어다. 과거 고교 비평준화 시절 경기ㆍ경복ㆍ경북 등 많은 명문고의 영문 이니셜은 K, 그 중에서도 경기고가 최고 명문고여서 K1이라 불렀다. 국감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의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1065명, 출신 고교는 300개교, 이 가운데 경기고 출신이 70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900년 10월3일 신학제에 의해 국내 최초의 중학교인 ‘관립중학교’가 서울 종로구 화동 언덕에 문을 열었다. 이게 바로 오늘날의 경기고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지상 최대 과제는 개화였다. 조선왕조 내부에서도 근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기운이 고조됐다. 전통적인 유학교육으로는 시대의 조류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다는 절박감이 선각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에 망명 중이던 박영효는 고종에게 개화에 대한 상소를 올려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서구식 교육을 도입해 근대화를 꾀하고 침몰 직전의 나라를 구하려 했다. 근대식 중등교육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관립중학교’가 드디어 개교했다. 경기고는 평준화정책 시행 전인 1970년대 중반까지 전국 최고의 명문고였다. 경기고는 이른바 엘리트 교육의 선두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과도한 입시경쟁과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등의 부작용도 적지않았다. 고교 평준화 이후 경기고와 같은 명문고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 새로운 형태의 엘리트 교육으로 학부모들이 겪는 경제적 부담과 학생들의 입시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박민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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