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神이 되기 위한 연습

인간과 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창조’ 능력의 보유 여부일 것이다. 여기서 창조를 사전적 의미로만 해석해 ‘이제까지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정의한다면 인간이 신의 영역에 속하는 창조를 흉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 창조의 의미는 기독교적 사고에 기반한 초월적 신의 ‘무(無)에서 세계창조’라는 차원에서 유한자(有限者)인 인간으로 초점이 옮겨지면서 ‘상상력’ 등과 관계된 뜻으로 새로이 규명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창조적 발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서적들이 붐을 이루는가 하면 기업들의 새해 핵심 사업과제로도 어김없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2007년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막상 ‘창조경영’의 성과를 묻는 자리에서 우리는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창조적인 결과물’만 요구하며 실질적으로 필요한 ‘창조적이기 위한 훈련’은 부족한 데 있다. 새로운 것은 그냥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꾸준하게 지적 호기심을 연마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생활 속에서 쉽게 연습하는 방법으로는 어린아이들과의 대화를 활용해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습득하는 방법이 있다. 그 외에 순간적인 생각들을 항상 수첩에 적어두고 정리하는 것, 항상 ‘왜?’라고 질문하는 것, 직감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을 소개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것들은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의 머리 속에 이미 잉태됐던 것을 꺼내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전과 조금만 달라도, 1% 정도만 새로워져도 창조적이라고 부르는 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실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새롭다고 하는 것의 거의 대부분은 기존의 기술ㆍ과학ㆍ개념의 또 다른 적용 사례들일 뿐이다. 심지어 컴퓨터의 발명조차 ‘새로운 종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이제 만추다.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인 가을, 좀 더 자유롭게 사고하고 유연하게 발상할 수 있는 신적(神的) 자아를 찾아 창조의 여행을 떠나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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