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한-EU FTA와 부품 분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큼 주목을 끌고 있지 않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의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한∙유럽연합(EU) FTA도 드디어 막바지에 이르렀다. 우리 국회와 유럽의회의 비준이라는 고비만 넘기면 내년 7월 발효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미 체결해 발효시킨 FTA가 다섯 개, 그리고 이들 FTA 상대국들에 수출하는 비중이 올해 중 15%에 이른 데 비해 아직도 FTA의 혜택을 맛본 기업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한∙EU FTA가 발효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와의 교역에서 EU가 12%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데다 양측이 대부분의 관세를 조기에 철폐하는 등 그야말로 수준 높은 FTA를 맺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실감할 FTA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기계분야 對EU 수출 1/4 넘어 최근 한미 FTA 추가 협상에서도 그랬듯이 한∙EU FTA에서도 자동차 분야가 주목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지난달 참여한 유럽의회 주최 한∙EU FTA 세미나에서도 EU는 자동차∙화장품∙와인∙치즈 등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눈에 잘 보이는 소비재의 흐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잘 단결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더 잘 반영되는 것은 한국이나 EU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이 세미나에서 필자가 통계자료를 보여주면서 유럽의회 의원들과 관련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듯이 한∙EU FTA에서 한국과 EU 양측 모두 더 큰 영향을 받고 기대해야 하는 분야는 부품∙소재, 그리고 기계류 분야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교역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부품소재∙기계류가 주로 포함된 기계(정밀기계 포함)∙화학 분야가 우리나라 대EU 수출의 4분의1을 넘는데 가장 큰 수출 분야인 조선∙전자 분야 대부분이 원래 무관세인 점을 고려하면 새롭게 시장이 열리는 효과는 부품∙소재∙기계류에서 더 클 것이다. EU 입장에서 보면 더 분명해진다. 기계∙화학 분야 수출이 40%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화장품을 합친 12%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 부품∙소재∙기계류시장을 놓고 일본∙미국과 경쟁하는 EU 입장에서는 이 시장에서 8% 관세철폐 혜택을 먼저 받는 것은 큰 선점효과를 낼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미국도 한국시장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분야임은 불문가지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로서는 항상 숙제가 돼온 부품∙소재∙기계류 분야에서의 대일 무역적자를 완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는 셈이다. 이 분야 수입시장에서 일본과 EU∙미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만큼 일본에 집중돼온 수입선을 전환하는 효과를 노려볼 만하다. 일본 제조업 기업들이 우리나라가 EU와의 FTA 협상을 마무리했을 때 더 긴장하게 됐다는 이 분야에서 더욱 그럴 것이다. 對日무역적자 완화 기회 될것 더 나아가서는 이 분야에서의 대EU 교역이 늘어나며 부차적으로 기대되는 산업협력∙기술협력 강화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EU FTA를 계기로 한국 기업과의 산업협력을 기대하는 EU 기업들이 늘어나고 EU가 앞선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이 기술협력을 추진할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다만 우리 시장이 EU 기업들에 더 열리는 만큼 EU 기업들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부품∙소재∙기계류 분야에 주로 종사하는 기업들 가운데 중소기업들이 많은 만큼 기업 스스로의 대응도 필요하겠지만 정부도 지원체제를 가다듬어야 한다. 우리 부품∙소재 업계의 입장에서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앞선 EU 기업과의 제휴를 모색하는 등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정부로서도 FTA 등에 따른 시장개방으로 어려움을 겪을 기업들을 돕기 위해 마련해둔 무역조정지원제도의 틀을 재점검하고 예산을 확충하는 데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