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큰손 자취감춰… 시장기능 상실/돈 마른 사채시장 실태는

◎한계중기 돈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전체 자금시장으로 파장 확산 불보듯사채시장이 고사직전에 놓였다. 제도권 금융기관이 기업에 대한 여신심사를 강화하면서 자금난에 봉착한 한계 중소기업들이 긴급자금을 구하기 위해 사채시장 일대를 나돌며 발버둥치지만 자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변했다. 더욱이 최근 사채시장에서는 큰 손들마저 거의 종적을 감추고 있다. 남아있는 전주들은 초우량기업의 어음을 제외하고는 할인을 꺼리고 있다.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어음이 시장에 나오면 몇몇 전주들이 모여들지만 B, C급 어음들은 금리를 아무리 높여준다해도 받아줄 전주를 찾지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A급어음은 일부 제도권 금융기관보다 금리가 낮은 월 1.05∼1.10%(연 12.6∼13.2%)에 할인되는 반면, C급어음들은 월 4%에 할인되는 등 사채시장에서 시장금리가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기업들은 그동안 부도위기에 몰리면 사채시장을 통해 긴급자금을 조달해 왔다. 그러나 「부도냐 회생이냐」의 갈림길에서 기업의 운명을 사실상 좌우해온 사채시장이 한보사태이후 장기간의 휴지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제도권 금융기관의 여신심사 강화 등 소극적인 영업행태보다 한계중소기업에 더 심각한 자금난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채시장이 사라진 것에 대해 자금시장의 안정, 지하경제의 양성화 등을 내세워 반기기도 하지만 막상 이 시장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면 기업들의 자금압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아직도 제도권 금융기관의 활동범위가 한계기업들의 자금형편을 어루만져줄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 금융시장에서도 사채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시말해 자금시장의 밑바닥에서 마지막 조달처로 기능해온 사채시장이 완전히 막힐 경우 그 파장은 전체 자금시장으로 넘겨질 수 밖에 없다. 사채시장이 급격한 경색국면에 접어든 것은 한보그룹 부도로부터 촉발됐다는 것이 사채시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보그룹은 부도직전 1, 2개월동안 은행으로부터 받은 어음을 총동원, 자금조달을 위해 몸부림쳤다. 급기야 다른 기업에서 어음을 구해 자금을 동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보는 이 어음들을 금리불문하고 상호신용금고, 할부금융, 파이낸스, 사채시장에서 할인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걸려든 것이 사채업자들이라는 소문이다. 금융계에서는 현재 사채시장에 1조원 가량의 어음이 잠을 자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들 어음은 한보가 제3자 인수되면 서서히 자금시장에 모습을 다시 드러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로부터 한보에 건내진 어음규모는 현재 은행감독원이 파악하고 있는 규모의 2배이상에 달할 것』이라며 『우리 은행도 2천장 이상의 어음이 나갔지만 9백장 정도만 신고했을뿐』이라고 덧붙였다. 사채시장의 여유자금을 한보가 일거에 쓸어간 것이다. 또 뒤따라 발생한 중소기업들의 부도는 사채시장을 궁지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자금시장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최근 사채시장에 직장인, 주부 등 소액 전주들이 등장한 것도 이같은 자금경색을 반증하고 있다.<이기형>

관련기사



이기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