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경제 비상체제 돌입日 일각선 "화폐개혁" 中 "내년 180억弗 풀어 부양"
'세계 동시 불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벗어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대대적인 내수 진작에 나섰다.
전세계적인 수요 감소로 수출이 격감하는 등 외부여건이 극도로 나빠지자 각국이 자국의 경기 부양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자국 내수경기만이라도 살려 향후 경기회복세에 적극 대비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선진국ㆍ이머징마켓 모두 금리 인하, 재정지출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지구촌 경제 상황이 4년 전 아시아 금융 위기 때보다 좋지 않아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 선진국 경제
세계 경제의 중심축인 미국이 가장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다. 올들어 아홉번이나 금리를 내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또 금리 인하 준비를 하고 있다.
6일 금리 인하 정책 회의에서 0.5%포인트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FRB는 올들어 금리를 10번에 걸쳐 모두 4.5%포인트나 내리게 된다.
대규모 경기 부양책도 곧 시행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의회에 송부한 경기부양책은 지난달 말 하원에서 1,000억달러 규모로 통과돼 현재 상원에 올라가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부양책이 의회에서 마무리돼 시행에 들어가면 올말부터는 일부에서나마 경기 회복 조짐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인플레를 우려, 경기부양책에 소극적이던 유럽 각국도 경비부양에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오는 8일 나란히 정책이사회를 열고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유럽 각국이 금리 인하라는 카드를 꺼낸 것은 경기침체가 예상 외로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 경제의 엔진인 독일 경제는 73년 오일 쇼크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증시는 연초에 비해 37%나 떨어졌으며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내년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제로'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마저 대두되는 실정이다.
10년 불황의 연장선에 서 있는 일본도 경기부양에 온갖 힘을 쏟고 있다. 거듭된 금리인하 조치가 제대로 먹혀 들지 않자 대대적인 세제 개혁을 구상 중이다.
세제 개혁에는 대폭적인 법인세 인하, 주식 양도세 인하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정부 일각에서 화폐를 개혁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엔을 1달러에 맞추도록 해 일본 국민들의 소비를 진작시켜보겠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 이머징마켓
이머징마켓은 선진국 경제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 등 선진국에 대한 대외 수출이 경제 시스템의 근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싱가포르ㆍ타이완 등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은 이머징마켓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이와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 테러 사태로 더욱 어려운 지경에 빠진 아시아 국가들이 정부주도 하의 경기 부양책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그동안 금리 인하 등 통화 정책 위주의 경제 정책에 주안점을 뒀다. 하지만 통화정책이 큰 효과를 거두자 못하자 케인즈식 경기 부양책을 들고나오게 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9월 11억달러에 달하는 추가 정부 지출안을 승인한 데 이어 중국은 내년 180억달러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을 펼칠 계획이다. ABN암로의 크리스토퍼 우드는 "아시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해 있는 아르헨티나는 최근 소비촉진을 골자로 한 경제대책을 내놓았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실시하기로 한 소비촉진책은 ▲ 신용카드로 구매시 부가가치세 5% 삭감 ▲ 노인들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수 경기 진작을 통해 최악의 위기 상황을 돌파해보려는 뜻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들 이머징마켓 국가들의 내수경기 부양책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미지수다. 민간소비 등 내수가 각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경기회복에는 큰 힘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먼저 회복돼야만 이머징마켓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한운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