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올해 10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할 전망이지만 이 같은 훌륭한 경영성적표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은행이 경영혁신과 자체 수익원 발굴을 통해 선진형 수익구조를 만들어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내가 잘해 이룬 성과라기보다는 여건이 맞아떨어져 결과가 좋았다’는 시각. 실제로 내년도 은행권의 순이익 전망은 무지갯빛 상황은 아니라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같은 비판론은 관(官)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윤증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30일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금융연구원 세미나에서 “은행들의 수익호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금융권이 스스로 어려웠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적자금 등 국민의 도움을 받았고 경영이 어려웠던 회사들도 사회적인 합의에 의한 지원으로 회복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윤 원장의 이 같은 비판은 은행권에 대한 감독 의지를 피력함으로써 자산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입장뿐 아니라 은행이 갖고 있는 공공성을 부각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은행이익의 착시현상’ 보고서는 금융감독당국의 기류를 대변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내은행들의 이익증가가 근원적인 수익창출 능력보다는 비경상적인 요인에 의해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지난 98년 이후 은행권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모두 100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올해 은행권이 거둬들일 순이익은 12조~15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지난해까지 누적 순이익을 모두 합쳐도 공적자금 투입액의 30%를 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은행들의 이익이 비경상적인 요인에 의해 급증했다는 근거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분석에 따르면 은행 본연의 업무인 영업실적을 기준으로 한 경영성과는 올해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이 거둬들인 이자이익은 13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불과 497억원 증가에 그쳤다. 반면 비이자이익은 같은 기간 오히려 5,578억원이 줄어든 2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대손충당금 환입을 통해 이뤄진 순이익 증가분을 뺀 이익은 올해 상반기 3조9,000억원으로 실제 당기순이익의 59.1%에 불과했다. 이는 대손충당금 환입이 사상최대 순이익의 일등공신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올해 은행 경영진이 신용카드와 기업 부문의 부실여신을 줄이는 데 총력전을 기울여 충당금 전입액이 감소했지만 이 같은 경영효과는 올해로 그친다는 게 문제다. 순이자마진(NIM)이 줄어드는 것도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음 보여준다. 은행권의 NIM은 지난해 1ㆍ4분기 2.9%대에 달했지만 지속적으로 감소해 올 들어서는 2.6~2.7%대에 머물고 있다. 일부 은행장들이 내년도 NIM이 추가적으로 떨어질 것에 대비한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 같은 우려에 대비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은행의 사회적인 공공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본격화되고 있다. 경기악화에 따라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사업자와 소호(SOHO)들은 은행권의 문턱이 너무 높아졌다고 한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의 강화된 대출기준을 빌미로 이들에 대한 대출을 줄여나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은행권의 중소기업ㆍ소호대출은 지난해보다도 크게 줄어들었다. 감독당국과 사회적 여론을 감안해서 은행권은 최근 들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은행의 공공성을 인정한 것이다. 외환은행에 이어 하나은행이 사회공헌재단 설립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사내 사회봉사단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이 거둬들인 이익의 규모에 비해 아직까지 이 같은 사회공헌 활동의 규모는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은행이 비경상적인 요인에 의한 이익을 성과급이나 배당금 등으로 과다하게 활용하는 것보다는 신 BIS협약에 대비한 특별준비금, 잠재적 성장을 위한 투자에 활용해야 하며 이익금의 일부를 은행의 공공성 실현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