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학, 취업학원 변모…정치의식이 없다"

대학가 '정치의식 상실' 논란…"대부분 학생들 '탈정치' 원한다" 주장도

"탈(脫)정치냐, 무(無)정치성이냐" 연세대 총학생회가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진보진영 단체의 숙박ㆍ집회 장소제공 요구를 끝까지 거부해 결국 주최측이 14일 밤 경희대로 `쫓기듯' 장소를 옮기게 된 사건을 놓고 대학가의 정치의식 실종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4.19 혁명, 80년 서울의 봄을 거치며 87년 6월 항쟁 등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학생운동은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반민주'의 장애물을넘는 원동력이 돼왔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한 설왕설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학교 더러워져, 학내집회 안돼" = 연세대 총학생회가 `보수집단으로 변질'이라는 곡해의 위험성까지 안고서 진보세력에 장소제공을 거부한 이유는 총학생회가`탈정치'를 표방한 이상 학내에서 정치성 행사를 개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우의 동의없이 수만∼수천명이 모이는 정치집회로 잔디밭ㆍ강의실 등 학교 시설물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면학분위기를 해친다고 총학생회는 주장했다. 이 학교 법대학생회장이라고 밝힌 학생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 "다른 사람에게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며 "이번 일로 고시공부를 하던 많은 분들이 공부를 못했다"고 반감을 드러냈다. 대학가에서 정치행사 장소 제공을 불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5월 고려대에서 열린 한총련 주최 `전국대학생 5월 한마당' 행사 때도 상당수 학생이 총학생회 게시판에 "학교가 더럽혀진다. 왜 하필 고려대냐"라며 강력히반대했다. 작년 11월 총파업투쟁을 벌인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는 서울대에서 총파업 전야제를 벌이려 했으나 대학의 비협조로 연세대-한양대-건국대로 잇따라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사양'했다지만 보수단체인 자유주의연대가 15일 총학생회를지지하는 성명을 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게 현재 대학가의 모습이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자체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연대 제안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지지성명을 발표해 주신 자유주의연대 관계자 분께도 감사의 말씀을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경희대 총학생회는 홈페이지에서 한 학생의 질문에 대해 "올해 8.15 행사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집회장소)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미리 학우들에게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밟았을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 "세상이 변했다 vs 정치의식 실종" = 이런 대학가의 `반(反)정치' 또는 `탈정치'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과거 대학 캠퍼스는 불의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에너지와 민주화 역량의 총본산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인식 수준도 크게 높아져 학생운동의 존재가치와의미가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는 논리다. 연세대 윤한울 총학생회장도 "대학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고 대부분 학생도 탈정치를 원하고 있다"며 "탈정치를 표방한 총학생회장이 당선된것은 그런 흐름의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진보세력의 학내 행사를 거부했다고 우리가 보수화되거나 우파의 편에 선 건 아니다"며 "정치색을 완전히 벗은 `탈정치'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5월 고려대의 이건희 회장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에서 소동이 벌어진 뒤 이른바 `운동권' 학생회인 총학생회가 개교 이래 처음 탄핵위기에 몰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이다. 당시 총학생회 탄핵안 서명을 받았던 `평화고대' 측은 "총학생회의 반자본 논리나 운동노선은 관심 없으며 다만 `이건희 소동'에서 폭력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학교 이미지가 훼손됐다"고 탄핵서명 이유를 밝혔었다. 10여년 전과 비교해 `상전벽해'격인 대학가의 이런 변화에 일각에서는 예비사회인인 대학생의 성숙하지 못한 정치의식이며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세태의 `희생양'이라고 비판한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취업ㆍ고시ㆍ영어 같은 현실문제에 바로 뛰어들면서도 그 `현실'이 개인의 범주에만 머물러 있을 뿐 정치나 통일과 같은 피부에 와 닿지 않고 개인과 큰 관련이 없는 사안에는 `고교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기능적 지식인만 양성하는 분위기의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에 진출한다면 과연 사회정의나 정치개혁 등 대의적 가치가 살아있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서울대 김세균 교수(사회학)는 "현재 대학생의 흐름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조류와 연관되지만 이를 너무나 앞세우는 것 같다"며 "이념적 성향이 다양화해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80년대와 같은 형태를 요구할 수도 없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공동체의 진로를 생각하는 큰 틀보다 신자유주의의 경쟁논리에 대학생들이 흡수되는 것도 새로운 형태의 정치성을 가진다고 보면 된다"며 "(바른 현상은 아니며) 한번쯤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脫)정÷寬?무(無)정치성인가"대부분 탈정치 원해" vs "한번쯤 짚어봐야"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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