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고통분담 호소의 전제(사설)

우리 경제는 20∼30년전에 겪었던 국제통화기금(IMF)신탁시대로 되돌아갔다. 덩치는 커졌으나 속이 차지 않아 일일이 간섭과 제약을 받아야 하는 법정관리수준으로 후퇴했다.IMF구제금융으로 일단 국가부도위기는 모면하게 됐지만 또 한번 사활의 기로에 섰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슬픈 처지에 놓였다. 경제의 틀을 그것도 타률에 의해 다시 짜야 할 형편이다. IMF협상 결과에 따라, 또 구제자금 조건에 따라 간섭강도가 달라지겠지만 경제정책 전반에 걸친 대수술은 불가피하다. 우선 재정 통화긴축이 예상된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사업규모는 대폭 줄여야 한다. 국민에게 고통이 전가되지 않을 수 없다. 성장률 하향조정과 물가상승 억제도 요구할 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이 급증하게 마련이다. 금융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됨에 따라 고용불안 바람도 예상된다. 실업증가와 함께 임금상승 억제에 따른 실질소득의 감소효과도 나타난다. 전반적으로 생활수준이 후퇴된다. 구제금융의 대가가 국민고통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정부는 고통분담을 다시 요구할 것이 뻔하다. 불과 1년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만 해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선진국을 약속했다. 최근 몇 달사이에 위기가 왔고 위기속에서도 IMF지원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강변했다. 가슴을 풀고 풍성거리게 허세를 불어넣던 정부가 이제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체면을 뭉개버린 치욕을 딛고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고통의 분담이 필요하다. 허리띠 졸라매기가 재출발의 필요조건이다. 고통의 분담은 정부가 솔선해야 하고 솔선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그 전제는 위기의 원인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실책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는 일이다. 책임회피와 실책을 예방하기 위해서, 정책 바로세우기를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흔히 사람이 죽으면 과실도 함께 묻혀 따지지 않는다. 정책 책임자가 퇴임하면 실책도 덮어졌다. 과거를 묻지 않는 관례가 무책임과 실책을 거듭하게 만든 것이다. 경제 자유권을 구속당하게 된 근원은 국가경쟁력의 뒷걸음질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조류를 읽지 못하고 허세에 들떴으며 정책이 구호에 그쳤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찾아보면 전경제팀의 섣부른 시장경제 실험의 실패에 있다. 환경과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데도 무리하게 시장논리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관성도 없었다. 부도방지협약, 협조융자협약은 번번이 실패,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기아사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위기가 온다는 경고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원화의 고평가가 경쟁력의 걸림돌이라는 사실도 모른척 했다. 실명제의 역기능이나 부작용에도 눈을 감아왔다. 위기의 도래신호가 나타나는데도 적기대응은 커녕 미봉책으로 땜질만 했을 뿐이다. IMF구제금융밖에 길이 없어 보이는데 실책을 호도하기에 바빴다. 이제 국민이 나설 수 밖에 없다. 자발적으로 고통을 감수하고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야 한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도 있다. 그러나 국민적인 역량을 결집하려면 정부가 위기의 원인을 밝혀 실정을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를 믿고 따른다.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잘못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