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또 카드대란인가

지난 2001년 8월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예정보다 앞당겨 갚았다. 재빠른 위기극복은 한강의 기적에 이은 또 하나의 국민적 성취였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이어 터진 '9ㆍ11사태'와 정보기술(IT)버블의 붕괴로 경제는 다시 어려움에 빠졌다. 결국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대폭 풀고 신용카드사용을 적극 장려했다. 70만원이던 현금서비스한도를 폐지하자 신용카드사들은 대학생은 물론 실업자 등 소득이 별로 없고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카드를 남발했다. 한 사람이 여러 장의 카드를 발급받아 소득보다 많은 현금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카드발급효과는 단박에 나타나 소비가 크게 살아났다. 카드사들 과당경쟁 지나쳐 그러나 외상으로 소를 잡아 먹은 결과는 참담했고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카드사의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후 국민ㆍ외환ㆍ우리카드는 모은행에 모두 합병됐다. 삼성카드는 그룹으부터 5조원을 수혈 받아 위기를 넘겼다. LG카드는 신한카드와 합병됐다. 400만명이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 경제적 파산을 선고 받았다. 신용불량자 중에는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카드사태가 경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정부와 금융사들은 신용불량자들의 누적된 이자와 원리금의 일부를 탕감해주는 등 신용회복운동을 벌였다. 기억하기도 싫은 10년 전 악몽이 요즘 다시 스멀거리고 있다. 카드사업이 높은 수익을 내는 황금알로 인식되면서 너도나도 카드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KB국민카드가 다시 독립했고 우리카드를 비롯한 은행 계열 카드사들은 물론 우체국금융까지 신용카드시장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2002년 8만명을 넘었던 신용카드 모집인은 한때 2만명 아래로 줄었다가 요즘에는 5만명을 넘었다. 작년 말 카드발급 수는 1억6,059만장으로 1년 새 1,200만장이나 늘었다. '제2의 카드대란'의 우려를 낳고 있는 카드론은 지난해 23조9,0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3.3%나 뛰었다. 금융권 가계대츨 증가율이 6.3%인 것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카드론 증가의 상당부분이 은행에서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는 저신용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 빚을 떠안은 채 다시 빚을 지는 악순환에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카드사들은 2003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때에 비해 재무구조가 튼실하고 위험관리강화로 부실비율도 현격히 낮다고 한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경기가 갑작스레 위축돼 연체가 발생하면 카드사의 부실이 증가하고 한곳에서 부실이 터지면 금융권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위기 때마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금융시스템은 어느 한곳만 잘못되면 전체가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카드대란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득에 비해 카드 빚이 과도한 부실회원은 순식간에 연체의 늪에 빠지고 이는 유동성위기로 몰릴 수 있다.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이미 800조원을 넘었다. 한국은행은 물가억제를 위해 단계적인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다. 고용은 불확실하고 소득은 늘지 않은 상황에서 '이자폭탄'이 터지면 신용불량자가 대량으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저신용자들의 연체율은 이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선제적 대응으로 제2대란 막아야 감독당국은 카드사에 과당경쟁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말로 할 단계는 지났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카드사들에게는 쇠귀에 경읽기다. 보다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시점이다. 불법ㆍ편법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다스려 경종을 울려야 한다. 카드 때문에 또다시 나라경제가 흔들리고 국민들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 정책실패는 한번으로 족하다. 다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2의 카드대란이 터지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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