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386세대나 486세대는 학창시절에 가정환경조사를 했던 기억이 날 것이다. 지금처럼 '가정환경 조사서'를 문서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교단에서 질문하면 해당 학생이 손을 드는 방식이었다. "집에 전화기 있는 사람?" "TV 있는 사람?" "라디오?" 이런 식이었다. 11살 때 서울로 유학 온 필자는 가정환경조사를 할 때 손을 들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현재는 어려워도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으니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떠나는 11살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부터 위인전을 쓰러 가는 거다" 위인전이 멋지게 나올 것 같아서, 가난하고 고생하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필자가 미국 유학을 하던 1990년대 초반에 유학생들의 꿈은 소니 텔레비전과 캠코더를 갖는 것이었다. 삼성 제품은 할인점의 구석에서나 찾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삼성과 소니의 처지가 최근에는 완전히 역전됐다. 기술의 삼성이 최고급 제품으로 소니보다 더 대접 받고 있다.
IT 등 후발주자 무섭게 성장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남가주대(USC) 공대는 2004년 3월에 '비터비(Viterbi) 공대'로 개명했다. 퀄컴의 공동 창업자인 앤드루 비터비가 부부 이름으로 이 대학에 5,200만달러(요즘 환율로 600억여원)를 기부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이민자였던 그는 방위사업체와 제트추진연구소(JPL)에 근무하면서 남가주대에서 디지털통신 전공으로 박사를 땄다. 그로 인해 필자는 2004년 말 남가주대의 기계항공우주공학부 교수이자 전직 우주왕복선 비행사인 폴 로니라는 친구로부터 점심을 얻어먹었다. 필자가 "삼성 휴대폰을 쓰고 있다"고 하자 한턱 쏘겠다는 것이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쉽사리 식사 대접을 않는 그들이기에 다소 의아했다. "왜?"라고 묻자 "삼성 휴대폰이 팔릴 때마다 삼성이 퀄컴에 로열티를 지급하는데 그 덕분에 비터비가 막대한 돈을 벌어서 우리 공대에 기부금을 낸 것이고, 네가 삼성 휴대폰을 사면서 그 기부금에 일조를 했거든"이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당시 공짜 점심은 꽤 맛있었지만 퀄컴 덕에 식사를 한다는 씁쓸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퀄컴은 지난해 삼성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판 칩이 20조원에 이르며 그중 12%를 삼성에 판매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삼성이 갤럭시 S6와 S6엣지 시리즈에 독자 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퀄컴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고정 수입원 하나가 사라질 위기인 것이다.
여기에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일본의 소니가 '과거의 적'인 애플과 삼성전자의 도움(?)으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소니는 디지털카메라 이미지 센서 최대 공급업체인데 삼성과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에 제품을 추가 공급하게 된 것이다. 살다 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되는데 퀄컴이나 소니 입장에서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은 있는 그대로 현재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고 공학은 미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항공우주공학자인 시어도어 폰 카르만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공학과학부인 셈이다. 그런데 이미 중국의 텐센트나 알리바바 등 정보기술(IT)업체를 비롯해 중국의 항공우주 산업 등의 글로벌 경쟁력이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자칫하면 퀄컴이나 소니가 삼성으로부터 느꼈을 아이러니가 우리들에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게 된 것이다.
항공우주산업서 미래 찾아야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는 공학도로서 사물인터넷(IoT)·3D프린팅·핀테크(fintech)·드론 등 많은 신산업이 있지만 항공우주산업을 키워서 국부를 창출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야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게 '질 좋은' 미래 세계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 가족들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공학 교수의 고민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