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월드컵 올인' 방송 반성해야

비록 우리나라가 16강전 진출에는 실패했다고 하지만 월드컵 경기는 국민적 관심사였다. 그리고 4년 만에 한 차례씩 돌아오는 호재였기에 지상파 방송 3사가 열띤 중계경쟁을 벌일 만했다. 따라서 방송사마다 월드컵 중계에 이성을 잃다시피 ‘올인’한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한국팀이 토고에 첫 승리를 거둔 뒤, 16강전 진출 티켓을 두고 프랑스ㆍ스위스와 경기를 벌이던 날은 동녘이 훤하게 밝아오는 새벽까지 집에서, 거리에서 수많은 시청자가 중계방송을 보며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하지만 아무리 월드컵이 국민적 관심사라고 해도 지상파 방송사들의 월드컵 중계방송은 비정상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방송시간의 절반에 육박하는 집중 편성도 그렇지만 똑같은 경기를 3개 채널에서 동시에 중계를 해댔으니 횡포도 이런 횡포가 또 없었다. 그것도 한국팀 경기뿐 아니라 예선경기와 16강전을 방송국마다 동시에 중계를 해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렸던 것이다. 한나라당 정종복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달 9일부터 23일까지 KBS1ㆍ2TV의 월드컵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각각 25.5%와 38.5%였고 MBC는 43.3%, SBS는 46.4%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월드컵 32강전 중 방송 3사의 메인 뉴스에서 월드컵 기사가 차지한 비율은 KBS 9시뉴스는 39.5%, MBC 뉴스데스크는 55.95%, SBS 8시뉴스는 60.77%나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의 공영방송인 ZDF는 평균 19.62%, 이웃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14.06%, 민영방송인 후지TV는 9.3%의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에 불과했다. 중계방송도 그렇다. 개최국 독일은 ARDㆍZDFㆍRTL 등 3개 지상파 방송이 하루씩 돌아가면서 월드컵 경기를 내보냈고 일본도 공영과 민영이 교대로 주요 경기를 중계했다. 반면 우리나라 방송국들은 한국팀 경기는 말할 나위도 없고 다른 나라끼리의 경기도 인기 있다 싶으면 3사가 동시에 중계방송을 감행했다. 다른 것이라고는 아나운서와 해설자밖에는 없었다. 이러니 시청자들, 특히 축구보다는 연속극이나 다른 교양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달 10일부터 23일까지 방송위원회에는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의 중복ㆍ과잉 편성에 대한 시청자의 불만 26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각 방송국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불만과 비판의 소리는 더욱 높았다. 이에 따라 방송위는 방송 3사에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의 편중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으나 우이독경ㆍ마이동풍 격이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자료에 따르면 방송 3사가 이번 독일월드컵 중계를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에 지불한 중계권료는 KBS 110억원, MBC와 SBS가 각각 82억5,000만원 등 도합 275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여기에 수백명의 현지 파견 취재 및 중계진의 경비를 포함한 제작비는 3사가 각각 60억원씩 등 모두 180억원으로 알려졌다. 방송 3사가 월드컵 중계방송에 총 455억원의 귀중한 외화를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중계권료로 275억원을 지불한 방송사들이 벌어들인 광고수익은 얼마나 될까. 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KBS 2TV가 160억원, MBC가 240억원, SBS가 210억원 등 도합 61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따라서 독일월드컵이 끝나는 오는 10일 이후에 정확한 결산 내역이 나오겠지만 제작비까지 포함하더라도 단순 비교를 하자면 ‘장사’는 우선 성공한 셈이다. 방송 3사가 여론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처럼 월드컵 방송에 올인한 이유는 결국 광고수익 때문이었다. 돈에 눈멀어 시청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월드컵에 쏠린 국민의 관심과 열정과 순수한 애국심을 돈벌이에 악용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월드컵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온 세상이 월드컵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국가 안보와 동북아 평화에 급박한 위험 요소로 등장한 북한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이다. 5ㆍ31 지방선거 참패의 후유증으로 정부ㆍ여당의 국정 운영은 더욱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국가 경제든 민생 경제든 회생의 기미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학교급식 사건까지 터지지 않았는가. 어쩌면 많은 국민이 월드컵에 열광한 이유는 정치에 식상하고, 민생고에 지치고, 안보에 불안한 심리를 월드컵 경기 관전으로 한때나마 잊으려 한 것은 아닐까. 일시적이나마 고통을 잊고 싶은 현실도피 심리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전파도 국력이다. 국민이 주인인 국가의 재산이다. 정부ㆍ여당의 것도 아니고 방송사 경영진이나 제작자의 사유물도 아니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터무니없는 발상법에 따라 황당무계하게 사용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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