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제발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김영선 정무위원장)
"요즘처럼 국회의원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정장선 지식경제위원장)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로 국회가 파행 또는 공전을 거듭하면서 전문적인 입법심사를 맡는 상임위 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이다.
이에 따라 되풀이 되는 여야 대치의 낡은 관행을 막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상임위 중심의 국회 운영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26일 민주당의 본회의장 및 상임위장, 국회의장실 점거와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강행처리 방침 속에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8일째 파행했다. 여당은 소관 상임위 또는 법사위 심사는 고사하고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쟁점 법안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할 움직임이다. 반면 야당은 의원 뿐만 아니라 보좌관과 당 사무처 직원들까지 동원, 실력으로 회의장을 장악하며 회의진행을 막고 있다.
결국 새해를 불과 1주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입법심사를 기다리는 산적한 법안들엔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각 상임위들은 "원내 지도부 지시로 수 개월간 논의한 법안은 상정조차 못하는 반면 쟁점 법안은 연내 졸속으로 처리할 판국'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상임위가 여야 당 지도부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밀려 법안 처리의 주도권 상실을 넘어 설 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이 독립적 헌법기관이라 하더라도 정당정치 구도에선 의원들의 의사표현이 다소간 당론에 구속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의원들의 전문분야 입법 심사권까지 박탈하는 것은 의회주의의 심각한 위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본회의 의결이 입법의 형식적인 절차라면 상임위 심의는 전문적 영역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의정활동 과정이기 때문이다.
상임위 내부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져도 원내 지도부가 전략적 차원에서 막는 경우가 잦다. 정보위의 경우 지난 22일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와 최병국 위원장은 논란을 빚고 있는 국정원법 개정안의 대안을 내년 1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23일 최 위원장은 각 당에 공문을 보내 대안을 25일까지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나라당의 한 정보위원은 "홍준표 원내대표가 정보위의 결정을 질타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정무위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이 강력 추진중인 금산분리제ㆍ출자총액제한제 완화에 대해 야당 지도부가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정무위 차원에서는 큰 틀에서 찬성하는 야당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임위 차원에선 협상의 여지가 있는데도 여야 정쟁으로 입법 심사 자체가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 민영화의 경우는 일부 여당 의원들이 좀 더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연내 처리해야 한다는 청와대측의 의견제시로 '속도 조절론'은 힘을 잃었고 24일 김영선 위원장 발의로 관련 법안이 제출됐다. 법안 개정에 참여한 한나라당의 한 정무위 의원은 "청와대 지시로 밤을 새워가며 개정안을 만들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시기가 이르다는 입장이지만 아쉽다"고 귀띔했다.
박찬욱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회 운영에서 상임위 중심주의는 정당한 절차"라면서 "정당이 중요한 미국과 유럽의 경우도 상임위의 결정이 당론으로 묵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