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99> 사랑의 풍경


사랑이라는 말, 참 달콤합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때때로 폭력이 되기도 하고 교섭을 위한 전략적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남녀간의 ‘막장 이별’이 언론을 장식하는 무서운 시대에, 사랑이라는 말은 그 발화의 주체가 갖고 있는 정체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매우 상대적인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본어로 ‘코이스루’라는 단어는 원래 우리 옛말의 ‘괴다’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재미있게도 ‘오모우’라는 단어도 생각에 관한 동사형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둔다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실체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면 배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생겨나게 될 불편함을 감수합니다. 사랑은 점유의 논리가 아니라 흐름의 논리입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자연스러움, 조건을 따지지 않는 행동 등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서양철학자들은 가장 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것이 사랑이라는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남녀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간의 사랑,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처럼 차원과 방향은 다양하지만 그들 모두가 누군가를 향한 무조건적 감정이자 행위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랑 또한 하나의 자원처럼 전락시켜버린 세상인 것 같습니다. ‘썸’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남녀관계를 넘어서 전반적인 사회 현상으로 번지고 있는 시대인 듯 합니다. 누군가와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뜻하는 이 개념은 일단 서로 어떤 사이인지 제대로 정의하기만 하면 그 상황을 ‘점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짓고 있음을 전제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서로 만난 날이 몇 일인지 세어 가며 기념하는 습관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100일, 200일, 300일 하면서 동전을 커플에게 선물하는 관행은 ‘귀여운’ 수준이고, 남녀 간에 값비싼 선물로 서로의 충성도를 확인하는 문화도 조금씩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오랫동안 서로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축하하며 그 기간이 각자의 책임과 규범이 되도록 강요하는 일종의 상징적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에게 사랑은 교환 가치나 소유의 요소로 환원될 수 있는 그 무언가인 것처럼 표현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뒷맛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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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은 기자가 ‘1일 1식’을 통해 여러분들을 만난 지 99번째 되는 날입니다. 얼마 전 어느 제과 기업은 9월 9일을 기념하는 ‘구구데이’를 통해 자사의 아이스크림 시리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하죠. 그만큼의 파급효과는 없겠습니다만 99일을 변함없이 무엇인가 이끌어 온다는 것은 많은 관심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기자는 독자와의 관계가 소유와 점유가 아니라 흐름에 속하기를 희망합니다. 편하게 누군가의 생각을 듣고, 또 누군가를 생각하고 나누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기를 꿈꿉니다.

언론(言論)이라는 단어 자체가 흐름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소통하는 가운데 논리적으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 자체가 형성된 것이니까요. 어쩌면 그 공간이야말로 각자의 입장이나 철학의 차이와 별도로 서로의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와 배려,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로 99일째 된 ‘1일1식(識)’도 앞으로 그런 모습을 띄어가는 플랫폼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전직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동의는 못하지만, 존중하겠습니다.’를 ‘동의하고 공감하지만, 제 시각은 조금 다릅니다.’로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서로 흘러가며 사랑합시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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