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PL법 斷想

아마 필자가 "독약을 먹고 살아났다"고 하면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짜로 독약을 먹었다. 그것도 한 종류도 아니고 여러 종류다. 진실은 이렇다. 통풍(痛風) 증세가 올 때마다 먹은 약이 바로 극약성분이었다. 붉은색 글씨도 선명하게 'POISON'혹은 한자로 '劇藥'이라고 경고문이 붙어 있어 섬뜩하다. '잘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라고 했으니 내 경우는 약이 된 셈이지만 치명적인 독이 되는 경우도 있을 듯 싶다. 실제로 이 약들을 사용하다가 부작용으로 앰뷸런스에 실려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피해자는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가 없었다. 제조회사가 면피를 한 것은 경고문 덕이다. <경고문: 본 제품은 의사의 지시 없이는 사용할 수 없으며 극약 성분임으로 주의를 요함>. 이 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PL(Product Liability: 제조물 책임)법은 업체의 경우 입에 쓰기로는 극약에 가깝다. 대응을 잘못하면 기업이 망하는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된다. 세계의 최대 석면 업체인 미국의 맨빌사는 제품에서 오는 위험을 소비자에게 환기시키지 못한 죄로 소송에 말려들어 소송비와 보상금에 못 이겨 파산을 했다. 외신을 통해 잘 알려진바 있지만 미국의 담배 회사는 흡연가들의 연이은 소송으로 배상금을 물어주다 회사가 망하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유죄 판결의 포인트는 역시 경고문과 관련된다. 폐암 발생의 위험으로 매출이 격감하자 '라이트'라는 표시로 소비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타르 성분이 낮은 것처럼 선전했으나 결국 거짓임이 드러났다. 국립암연구소는 '라이트'를 피웠을 경우 타르와 니코틴이 더 많이 흡입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필립모리스 등 3대 담배회사는 소비자를 속인 죄로 기업이 쓰러져도 몇 번 쓰러질 어마어마한 배상금 압력을 받고 있다. 부실 아파트, 수상한 식품, 위험한 장난감, 만병통치의 가짜 약류 등 소비자의 안전을 도외시한 제품들이 지뢰처럼 깔려있어 불안하다. 이런 걸 만든 사람들에게 PL법은 극약이 될 듯 싶다. 물론 잘 받아들이면 기업은 망할 사태를 미리 막아주는 좋은 치료약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유감인 것이 있다. 부패 품격 미달 부도덕 속임수의 '정치 제조물들'은 어쩔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의원 지사 시장 등 선출직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만들어 내는 정치적 제조물이라 할 수 있다. 기왕 내친 김에 유권자들에 대한 피해보상 특별법이라도 만들었으면 싶다. 그런데 실은 불량품들을 '제조한' 장본인은 유권자들 자신이니 배상책임 규정부터 아이러니하다. 손광식(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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