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4일] <1276> 성탄 휴전

1914년 12월24일 서부전선 벨기에 이프레. 독일군 진영에서 수많은 불빛이 반짝였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단 촛불의 정체를 영국군이 의심하고 있을 때 캐럴이 울려 퍼졌다. ‘고요한 밤~거룩한 밤~’ 영국군은 ‘노엘~노엘~’로 응수했다. 총알과 포탄 대신 캐럴과 박수가 오간 뒤 작은 트리를 든 한 독일군 장교가 영국군 참호에 접근해 말을 꺼냈다. ‘이 밤, 우리는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소.’ 양쪽 병사들은 참호에서 나와 담배와 햄ㆍ위스키를 선물로 주고 받았다. 성탄절인 25일 양측은 참호 주변의 시신을 수습하고 공동 장례식을 치렀다. 병사들끼리 주소를 교환하고 영국군은 독일군의 머리를 깎아줬다. 축구도 했다. 독일의 3대2 승리. 작은 휴전 소식은 빠르게 퍼져 약 400㎞에 이르는 전선에서 병사들은 평화를 맛봤다. 비공식 성탄휴전은 영국 타임스지에 실린 기사를 본 양국군 수뇌부에 의해 깨졌다. 전투 명령을 받고도 1월 말까지 허공에 총을 쏘던 병사들의 태업은 오래가지 못하고 양측은 살육 모드로 돌아갔다. 광기로 치닫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4개월 뒤 독일군은 성탄휴전이 있던 이프레 전선에서 독가스까지 선보였다. 미국이 2차대전으로 대공황에서 벗어난 것처럼 작금의 세계적 불황을 극복할 수단은 전쟁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지만 턱도 없는 소리다. 생산과 고용 극대화라는 이전 전쟁의 부수적 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은 단추만 누르면 모두가 공멸하는 세상이다. 최악의 평화라도 최선의 전쟁보다는 낫다. 성탄휴전으로부터 94년 만인 올해 11월 영국과 독일 군대는 이프레에서 축구시합을 포함한 첫 공식 기념행사를 가졌다. 2006년 한 경매에서 1만4,400파운드에 낙찰된 당시 병사의 편지 한 구절. ‘성탄절이다. 신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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