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시룡 칼럼] 경제위기논쟁의 虛實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

외환위기 직후 위기극복을 위해 구조조정을 지휘하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비관론자로 변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외환위기라는 재앙을 맞게 되자 비관론을 펴는 것이 경제학자 입장에서는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관이 맞아떨어지면 예측을 잘하는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이고 설령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비관론에 근거한 경고 덕분에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는 명분이 생긴다는 점에서 낙관론보다는 비관론 쪽에 서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위기여부는 관점의 차이 우리 경제가 위기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실물경제에 참여하는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내소비와 투자 등 내수위축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부분을 중심으로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출 부문과 내수 부문,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평균적으로는 5% 정도의 실질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위기라고 느껴질 어려운 부분이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머리는 차가운 냉장고 속에 있고 발은 뜨거운 불판 위에 있어도 체온은 정상일 수 있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론에는 지금 당장은 위기가 아니지만 현재와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일종의 위기도래론도 포함돼 있다. 차이나 쇼크, 고유가,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 대외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경제성장의 유일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수출마저 위협받을 조짐을 보이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위기론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하반기부터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지만 높은 가계부채와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 등 구조적인 문제를 감안할 때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대기업들이 의욕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했지만 규제완화와 노사관계 안정 등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자극할 수 정도의 투자회복이 가시화될 수 있을지 역시 회의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위기론에 대해 참여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위기론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명하고 있다. 경제위기론은 ‘과장된 위기론’이며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며 위기론에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우리 경제는 지난해 3.1% 성장에서 올해는 성장률이 5%대로 높아지고 내년부터는 6%의 건실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정부의 낙관론대로 경제가 회복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의 경제상황이 위기가 아니라는 정부의 진단이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거시지표면에서 연간 5%대의 실질성장에다 200억달러가 넘는 무역흑자를 내는 상태를 위기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개발연대 장기간의 고도성장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높이로 보면 5% 실질성장이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닐지 모르지만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면 결코 낮은 성장률은 아니다. 정부 분명한 비전 제시를 결국 우리 경제가 위기냐 아니냐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진단과 판단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비관론이든 낙관론이든 니름대로 근거와 유용성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우리 경제의 전모를 포괄하는 것이 아닌 부분적 진실이라는 사실이다. 얼마 전 블룸버그통신은 소비위축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로 위스키 소비량 급감을 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세계 위스키업체의 수출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위기라는 주장이 말이 안되듯이 한두 가지 지표나 단면을 놓고 위기니 아니니 다투는 것도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부부터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공연히 위기론에 흔들리지 않도록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기조를 수미일관하게 추진함으로써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위기론을 잠재우는 최선의 길이다. 학자나 전문가들도 실익 없는 위기론보다는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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