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4월 27일] 개미, 베짱이, 6%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서 베짱이는 게으름뱅이 실패자의 대명사였다. 여름 내내 그늘에서 노래만 부르며 놀던 놈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지자 허기져 개미에게 구걸하러 간다는 내용은 꼬맹이들에게 어렴풋이 '세상의 정의'를 일깨워주는 존재였다. 얼마 전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타워스왓슨이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환란이후 상대적 박탈감 커져 한국을 포함한 22개국 직장인 2만여명을 대상으로 업무 몰입도를 조사했더니 우리나라에서는 단 6%만이 '자신의 업무에 몰입한다'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100명 가운데 6명만 자신의 업무에 전력투구한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구성원을 이끌어간다지만 수치 자체는 깜짝 놀랄 정도로 적었다(조사 대상 22개국에서 같은 자세로 업무에 임하는 직장인들의 평균치는 21%). 이 결과를 놓고 타워스왓슨은 국내 기업 경영진의 리더십 부재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경영진의 리더십에 만족하는 국내 직장인들이 37%에 불과해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저 수준으로 나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경영진이 주도하는 인재육성, 조직 비전 제시와 실현, 직원복지에 대한 관심 등의 수준은 조사 대상국 평균 이하로 매겨졌다. 기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타워스왓슨의 해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국의 직장인이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는 데는 직장생활의 상당 부분을 이끌어가는 기업 경영진의 책임도 절반쯤 있다. 하지만 학교와 교과서에서 가르친 내용만으로 살아가기에는 개개인의 생존환경이 너무 열악해졌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는 나머지 절반의 이유를 결코 해석하기 힘들 것이다. '개미의 성공, 베짱이의 실패'로 읽혔던 동화는 최근 "여름 내내 노래 부르며 놀던 베짱이는 유명한 가수로 성공해 속된말로 대박을 터뜨렸지만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던 개미는 평생 자식 뒷바라지로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한 채 아직도 공사판을 전전한다"는 식으로도 패러디되고 있다. '성실한 개미의 몰락과 게으른 베짱이의 화려한 부활'로 재구성된 이 동화 패러디의 단상에는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는 한국 직장인 94%를 설명하는 핵심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는 국가 외환위기를 전후로 너무 많이, 너무 급격하게 변질됐고 왜곡됐다. 이 중심에는 자고 나면 오르는 집값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 전체로는 좁은 땅덩어리 위에 경제의 볼륨이 상대적으로 과하게 커진 결과로 이해하면 그만이겠지만 구성원의 눈높이에서 본다면 이야기 줄거리가 달라진다. '개미의 몰락과 베짱이의 부활'마냥 외환위기를 기점 삼아 우리 사회는 직업을 통한 소득보다 불한소득(不汗所得ㆍ땀 흘리지 않고도 벌어들이는 소득)이 부 축적의 주류를 차지하는 비정상 구조가 시작됐다. 비정상적인 상황은 언제고 사회비용을 요구한다. 불한소득만 노려온 우리 사회의 실패한 결과물이 지금 국가적 골칫거리가 된 지방아파트 미분양 사태다. 불한소득 비중 낮출 정책 시급 정부는 최근 중소 건설사들의 줄도산 위기를 넘겨주기 위해 5조원을 투입해 4만채의 미분양아파트를 해소해주겠다고 나섰다. 대통령이 직접 "(어쩔 수 없이 이 조치를 취하지만) 건설업체의 도덕적 해이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으나 출발부터 투기열풍에 의존해 대박을 꿈꾸다 발생한 것이 지방아파트 미분양 사태라는 점에서 정부 지원 자체가 사실상의 도덕적 해이다. 거시에서 경제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고충을 십분 이해하지만 이제 겨우 잦아들기 시작한 부동산 투기 기대심리를 다시 일깨울까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한국 직장인들의 업무 몰입도를 정상적인 수준인 21%로 끌어올릴지, 아예 0.6%로 떨어뜨릴지는 불한소득의 비중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정책결정권자들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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