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6일] 시부사와 에이이치


담합. 일본 기업들의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경쟁해도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다.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 총수끼리 머리를 맞대는 ‘재계 협조주의’의 일면이다. 요즘은 다소 바뀌고 있다는 일본식 자본주의, 특유의 기업문화에는 한 사람의 족적이 녹아 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일본 현대 기업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유교문화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사람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1840년 3월16일, 도쿄 인근의 부농(富農)이자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학을 익힌 후 막부의 재정 확충에 힘을 쏟았다. 공을 인정받아 참가한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증기기관과 방적기계 등 서구 문물에 충격받은 그는 일정을 연장하며 회계법과 주식시장ㆍ은행제도를 익혔다. 귀국 후 대장성 관료직을 벗어던진 그의 출발은 1874년 국립제일은행 설립. ‘국립’이라는 명칭만 들어갔을 뿐 사설은행인 제일은행을 통해 거의 모든 영역에 진출했다.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는 물론 제지ㆍ방적ㆍ비료회사도 세웠다. 1931년 죽을 때까지 그가 설립에 참여한 기업은 모두 500여개.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 속에는 한국의 경인ㆍ경부철도도 포함돼 있다. 대한제국 초기 통용화폐인 제일은행권의 도안에는 그의 초상이 들어 있었다. 시부사와 경영관의 바탕은 공자(孔子). ‘경제ㆍ도덕 합일설’을 주창해 ‘유교자본주의’와 일본 특유의 노동ㆍ경영관의 기초를 깔았다. 85세에 18세 여성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았지만 정작 본인은 논어의 도덕률과 경영간 결합을 강조하며 다녔다. 오늘날 일본은 시부사와를 인정하면서도 극복하려 애쓴다. ‘결과의 평등’과 ‘공공협조’를 추구하는 시부사와 모델이 21세기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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