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소음·먼지공해 못살겠다" 소송 봇물

기업-공공기관 책임회피·마구잡이 개발이 분쟁 부추겨

13m 높이의 8차선 고가도로인 서울외곽순환도로 부천 송내IC~서운IC 구간. 하루 20만대 가까운 차량이 지나는 이 도로와 불과 46m 떨어진 곳에 위치한 P아파트 주민을 비롯한 3,000여명은 한국도로공사ㆍ대한주택공사ㆍ한국토지공사 등을 상대로 6억7,000만원의 소음피해 손해배상소송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도로공사와 토지공사가 지난 5월 내려진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1억4,100만여원의 배상명령을 거부하자 집단소송에 나섰다. “2년 넘게 살고 있는데 시끄러워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다”는 주민들의 불만에 대해 거대 공기업들은 배상명령을 거부한 채 서로 책임을 미루다 대형송사로 번졌다. 난개발에 따른 피해와 주민권리의식 향상 등으로 생활환경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91년~2004년 8월까지 이곳에 접수된 환경분쟁건수는 1,467건. 특히 2000년 이후 접수건수가 1,066건으로 전체의 73%에 달했다. 법원에도 소송이 봇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환경분쟁 전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일조ㆍ조망침해 소송이 한 달에 단 한건도 없었는데 요즘에는 3~4건이 한꺼번에 몰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환경분쟁의 급증은 높아진 시민의식에 반해 법ㆍ제도 규정이 미비하고 관련기관ㆍ업체가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기택 중앙환경분쟁위 사무국장은 “거주자들의 권리의식은 몇 년 사이 빠르게 신장됐지만 업체나 공공기관은 이전의 관행을 들먹이거나 서로 책임을 미루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법ㆍ제도도 환경송사를 부추기고 있다. 도로ㆍ철탑 등 구조물에 의한 환경피해는 직권조정 권한을 지닌 환경분쟁조정위에서 다루지만 분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파트ㆍ대형건물 등 건축물로 인한 피해는 지방자치단체에 설치된 건축분쟁조정위원회가 다루게 돼 있다. 그러나 건축분쟁조정위는 직권조정기능을 갖고 있지 못한데다 인허가권자인 지자체 산하에 설치돼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지자체의 건축분쟁조정위는 몇 년간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을 정도. 건설교통부가 뒤늦게 건축분쟁조정위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하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6월 입법예고했지만 본격 시행까지는 1년 이상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시대에 맞지 않는 관련법령도 문제다. 환경분쟁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건설현장의 소음ㆍ진동ㆍ먼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방음벽, 분진망, 공사시간 및 방법에 대해 현행 관련 법규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법원도 상하급심이 동일 사건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내려 혼선을 부추긴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일조ㆍ조망권 전문 이승태 변호사는 “건축물 인허가시 일조ㆍ조망평가를 의무화해 분쟁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며 “최고법원 판례가 부족한 만큼 환경분쟁 전담 재판부를 확충해 판결의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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