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Y2K 딜레마 확산

Y2K의 피해가 어느 정도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연말 생산량과 자금확보 등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수·합병과 같은 주요한 의사결정은 아예 내년 이후로 미루고 있다.또 금융기관들은 자금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무조건 확보해두자는 입장이어서 부작용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Y2K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어음의 만기가 종전 1개월 단위에서 1일 단위로 바뀌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개인들도 2000년 전후의 사업 및 여행계획을 예정대로 할지 아니면 수정할지를 놓고 대부분 고민에 빠져 있다. 연말 항공기 예약률이 저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항공사들의 경우 Y2K 인증을 받아놓은 상태지만 에어프랑스가 최근 Y2K에 대한 우려와 예약률 저조를 이유로 12월31일과 1월1일 한국취항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싱가포르 항공도 이 기간 동안 국제선 취항을 예년의 3분의1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며 다른 항공사들도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연말 중국·일본 등 국제선 취항계획에 대한 의사결정을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딜레마는 Y2K 준비상황 및 대응에 대해 평가와 전망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더라도 문제발생의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러시아와 아시아 국가들의 준비가 미흡해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러나 이미 몇년 전부터 문제점이 부각됐기 때문에 결정적인 오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사재기 등 민간의 대응은 심리적인 요인에 좌우되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에 맞춰 미리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Y2K 피해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자 일부 기업들에서는 아예 손을 놓고 「변수」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생필품 업체의 경우 연말 수요폭증이 내년 초 수요감소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생산량을 일정하게 한다는 전략을 세운 곳도 있다. 보험사의 경우 보험계약이 증가할 것을 기대하면서 은밀히 판촉작전을 벌이는 한편 보험금 계산 등에 대한 오류발생을 막기 위해 분주하다. 기업 및 개인의 Y2K딜레마는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금융시장 왜곡=Y2K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악의 경우 대출 관련 자료가 소실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내년 이후에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의 인수를 꺼려 통상 1개월 단위인 어음이나 채권의 만기를 연말 이전으로 맞춰 39일짜리, 46일짜리 등으로 변칙 유통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은행들은 올해 12월31일과 내년 1월3일을 휴무일로 정하는 한편 연말 이전에 모든 고객의 거래원장을 인쇄해 보관하기로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불안심리가 확산돼 인출사태가 일어날 경우 유동성 부족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예금을 계속 보관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들의 경우에는 호·악재가 혼재돼 있다. Y2K 문제가 발생하면 계약유지와 보험금 산정 등에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지만 나름의 이득도 있다. 연말로 다가갈수록 불안심리가 확대되고 이 경우 보험가입이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Y2K에 철저히 대비하는 한편 보험가입 판촉을 늘릴 방침이지만 공연히 불안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은밀히 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자금확보전=기업들은 물론 미 재무부까지 연말에 다량의 현금을 보유하기 위해 채권 발행을 늘리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리(FRB) 의장은 금융기관들의 과잉대응이 오히려 내년에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다. 이에 따라 미 자금시장의 금리가 오르고 있으며 일부 투자가들은 Y2K 문제발생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에 대한 투자금액을 서둘러 회수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8월 올 연말에는 예년의 약 2배에 해당하는 800억달러를 현금으로 확보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의 단기채권 발행사인 GE 캐피털은 이미 수십억달러의 특별융자 계약을 거래은행들과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Y2K로 인해 금융 시스템이 마비, 현금부족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들도 Y2K의 실제 파급효과를 모르기 때문에 자금확보 규모가 부족한지 과잉인지에 대해 선뜻 답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자금수요가 몰리고 시중금리가 상승하면서 중소기업들은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Y2K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M&A 감소=미국의 경우 하반기들어 인수·합병(M&A)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톰슨 파이낸셜 증권에 따르면 미국 기업간 M&A 건수는 지난 6월의 1,019건을 정점으로 7월 955건, 8월 862건, 9월 759건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특히 10월은 21일까지 474건의 M&A만이 성사돼 올들어 처음 700건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성사건수가 줄어들면서 미국의 3·4분기 M&A 금액도 지난해의 3,580억달러보다 10% 떨어진 3,220억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M&A가 예년에 비해 현저히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금액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중소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일찌감치 Y2K 문제를 해결했지만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상대적으로 Y2K 사고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큰 피해가 예상되는 금융과 기술 관련 회사들의 M&A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생산규모 미확정=미 적십자사는 2000년 1월1일 컴퓨터 오작동으로 인한 혼란에 대비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3~7일분의 생필품과 비상용 물품을 준비하라고 공식 권고했다. 관련 업계는 오는 11월 말 추수감사절을 전후해 크리스마스까지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수요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직까지 생산규모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대대적인 Y2K 상품증산과 판촉광고에 따를 위험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 이들 기업은 무분별한 사재기와 대규모 현금인출 사태 등 혼란이 발생할 경우 이를 조장했다는 비난을 들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또 연말의 수요증가가 내년 초의 수요감소와 반품사태로 이어져 오히려 기업의 수익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기업들의 고민을 깊게 한다. /정경·사회·증권·국제부 김호정기자GADGET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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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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