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정부와 재벌... 구, 비, 북

그는 결혼후 열심히 일했지만 그만큼 가정을 등한히 하게 됐다. 몇년뒤 친구들이 요즘은 결혼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견줄 비(比)자를 쓰는 것이 아닌가.이후 사업을 마구 벌리다가 마침내 부도를 냈고, 부인까지 이혼을 요구했다. 친구들이 위로차 방문하자 그는 망연자실해 하며 북녘 북(北)자를 썼다. 구(臼), 비(比), 북(北) 이 세 글자는 예로 부터 남녀간의 사랑이나 친구간의 우정을 나타내는 표시로 많이 쓰였다. 구(臼)는 두 사람이 서로 껴안은 상황을 표현한 글자이며, 비(比)는 어느 한 쪽이 상대방에게 구애를 하거나 또는 배척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 또 북(北)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린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 정부와 재벌간의 관계도 앞서 예시한 두 남녀의 경우와 유사하다. 주지하다시피 60, 70년대 개발경제시대때 정부와 재벌은 서로 짝짝꿍을 맞춰가며 신나게 성장의 절구를 찌었다. 이른바 「구(臼)의 시대」였다. 80년대 이후 노사문제가 불거지고 재벌의 경제력집중이 도마위에 오르면서 양자의 관계는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서로 힘을 견주는 가운데 겉으로는 재벌이 정부에 구애를 하는 모습이었고 속으로는 최고권력자가 재벌에 손을 내밀었다. 소위 「비(比)의 시대」가 되면서 서로간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곪으면 터진다고 했던가.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불행히도 경제위기가 현실로 닥쳤다. 이에 따라 새 정부는 재벌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1년반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추진하고 있다. 바야흐로 정부와 재벌이 서로 등을 돌리는 「북(北)의 시대」가 도래했다. 총수의 독단과 선단식 경영은 이제 더 이상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재벌개혁 방향은 분명히 옳다. 이같은 병폐가 워낙 뿌리깊이 박혀있기 때문에 과감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한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이 너무 경직돼서는 곤란하다. 재벌개혁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재벌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지만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을 보면 재벌해체에 더 무게가 실려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사외이사를 50% 이상으로 하겠다는 발상은 정말 문제다.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어떤 난관도 마다하지 않고 모험도 불사한다는 자세다. 「도덕군자」들이 안방을 차지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과연 제 갈길을 빨리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만 탓할 수도 없다. 재벌들이 그동안 스스로 개혁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가 재벌을 믿지 못하고 이중삼중의 제동장치를 건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재계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구(臼)의 시대」를 열어야만 진정한 기업경쟁력과 선진한국 건설을 기대할 수 있다. 북(北)은 「패배(敗北)할 배」의 뜻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金埈秀 정경부 차장J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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