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IMF 이렇게 넘는다]① 거평유통 법정관리 정동호씨

IMF체제 아래서의 1년은 우리의 일상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소득은 줄고 실업이 늘어나면서 자살과 범죄가 급증하고 사회적인 무기력 현상도 현저하다.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좌절과 탄식만으로는 IMF를 결코 극복할수 없다는 자각이 움트고 있다. 그같은 각성이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지면서 IMF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사례들이 나타나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사회 각분야에서 IMF한파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법정관리인은 고장난 회사를 살리는 의사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만큼 가치있는 일도 드물 것입니다』 지난 5월부도로 쓰러진 거평그룹의 계열사인 거평유통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정동호(鄭棟皓·53)관리인. IMF체제가 우리에게 안겨준 최대의 시련은 기업의 도산이다. 한달 평균 1,500개 이상의 기업이 쓰러져 가고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업체가 150여개에 달하는 현실에서 鄭사장은 성공적인 「사회의 의사」중 하나이다. 거평유통은 광주 송정리에 할인점 「거평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연간 매출액 300억원 남짓한 조그마한 업체. 최근 부도이전보다 더 많은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호전되고 있다. 鄭사장은 법정관리결정 최종단계인 법원의 인가결정을 앞두고 내달 26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회사정리계획안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정리계획」이라면 언뜻 청산을 떠올리지만 실상은 앞으로 10년동안의 거평유통 살림계획을 세우는 갱생계획이다. 580억원에 달하는 부채 해결방안을 놓고 채권단과 씨름도 해야하고 사업계획도 만들어야한다. 그가 경총의 법정관리인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거평유통의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것은 지난 7월. 그가 관리인으로 선임된 이후 처음 한 일은 직원들 기살리기였다. 『부도 난 회사의 직원들은 기부터 죽어요. 직원들이 안심하고 열심히 일해야 회사가 살 수 있잖겠어요』 그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좌우명인 「고생을 낙으로」를 강조한다. 현재의 고생을 미래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자는 것. 그는 자신이 다니던 국제그룹이 해체돼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지난 85년 어느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물건을 대주는 공급업체와 매장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임대업주들에게도 「거평마트는 분명히 살아날 수 있으니 협조와 격려를 당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일일이 보냈다. 또 매주 화요일이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광주매장을 찾아 운영상태를 점검했다. 鄭사장은 『자신의 인생이 부도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힌다. 국제그룹에서 공중분해의 비운을 맛보았으며 건설업계 연쇄부도의 시발점이 된 96년 우성그룹 부도 당시에는 우성그룹 기조실장 자리에 있었다. 『그때는 악몽같은 세월이었죠. 1년여동안 집에 12시 이전에 들어가 본적이 없었어요. 매일매일 피말리는 부도와의 싸움이었죠』라고 그는 회고한다. 96년 우성그룹이 부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자 그는 보름동안 법무법인과 직원들을 이끌고 호텔에서 법정관리 신청을 위한 작업을 주도했다. 우성은 부도이후 뒷처리가 깔끔한 기업으로 건설업계에 평이 나있다. 그때 연마된 그의 기업의사 솜씨가 IMF시대에서 유감없이 발휘돼 거평유통은 요즘 회생의 가능성을 점점 더해가고 있다. 부도기업이라는 나쁜 이미지도 거의 불식됐고, 상품납품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매장도 새롭게 단장했다. 부도이후 한 때 절반선으로 뚝떨어졌던 매출도 최근에는 하루 평균 1억원선으로 부도이전보다 1,000만원 이상 늘었다. 『내년 350억원 매출달성은 무난할 것 같습니다. 거평유통을 광주 전남지역에 기반을 둔 알짜 유통기업으로 자리잡게 만들겠습니다』고 말하는 鄭사장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학인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