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경제’라는 본지 시리즈를 접한 10인의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의 내수부진은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덧붙여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휘말리는 점을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내년 성장률에 대해서도 대다수가 4% 초반대를 예상, 4% 중반을 장담하는 정부의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적대적 사고 방식부터 버리고 규제완화를 통한 친기업적 정책으로 과감하게 유턴할 것을 주문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경제’…역사에 남을 시간=우리 경제의 오늘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싸늘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찾기 힘들다는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우선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건설경기 침체에 대한 걱정을 내세웠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그룹장은 “체감경기 악화가 가장 심한 곳이 건설 분야”라고 지적했고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인위적 부양이 아니더라도 파인 튜닝이 없으면 건설경기 급냉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부진한 설비투자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진단도 많았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으로 장기적 성장기반이 약화되는 것이 우리 경제가 처한 가장 답답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악화된 대외여건이 미칠 악영향도 고민거리였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침체된 내수와 내년 세계경기 둔화로 인한 외수부진으로 복합불황 가능성이 크게 걱정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양극화, 복지 이슈로 인해 파묻혀버린 경제성장과 기업가 정신을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사회 전체 부위기가 경제에 올인(all-in)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정책실패는 경제보다 정치 쪽에 치우친 탓”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좌파적 성향의 분배주의에 치달아 세금만 더 걷겠다는 얘기만 하다 보니 소비ㆍ투자 전반에 불안감만 생겼다”고 지적했고 김대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양극화에 대한 해결점이 오히려 사람들의 기를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이번 정부의 내수부진 상황은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내년 성장률, 잘해야 4%대 초반=불안한 심리는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내년 경제에 대한 먹구름 낀 전망이 이를 뒷받침했다. 당초 5%대의 성장률을 예견한 정부도 내년 경제성장률을 4%대 중반(권오규 경제부총리, 1일 외신기자간담회)로 내려 잡았지만 전문가들은 이조차 ‘장밋빛 낙관론’으로 치부했다. 10인의 경제 전문가 가운데 7명이 내년 성장률이 4%대 초반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이달 중순부터 차례로 내년 경제전망을 내놓을 민간 경제연구소 대다수는 “내년 상반기 경제는 별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정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어느덧 4% 초반까지 정말로 내려앉은 것은 아닌지 우려감이 들 정도로 전문가들이 보는 우리 경제에 대한 미래 비전은 어두웠다. 내년 하반기 이후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도 높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가ㆍ환율 등 대외여건 회복으로 회복기로 접어들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은 대선국면으로 인해 높아질 정치파고가 경제심리를 송두리째 휘감을 것으로 우려했다. 유 경제본부장은 “역대 정권들 대다수가 집권 마지막 해에는 침체된 경기에 고민해왔다”며 “내년 역시 별다른 돌파구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친기업적 정책으로 과감하게 유턴해라=난국을 돌파할 타결책에 대한 진단은 한결같았다. 경제 전문가들 대부분은 “뾰족한 특단의 대책을 찾기보다 그간 누차 제기된 원론적인 것부터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선 항상 한발 늦어온 정책 타이밍부터 맞추고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정책의 일관성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높았다. 권 수석연구원은 “통화ㆍ재정ㆍ건설ㆍ민간소비 등 모든 분야에서 정부의 정책시기가 제때를 놓쳐왔다”며 “금리도 하반기 뒤늦게 올렸고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내수 분야에서는 부진한 소비를 단기간 회복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기업투자 촉진이 시급하다는 충고도 줄을 이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조사본부장은 “가처분 소득 증가율이 둔화된데다 금리ㆍ이자부담으로 가계의 소비확대는 기대하기 힘들다”며 “그나마 유보자금이 남아 있는 기업들이 돈을 쓰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한양대 교수는 “기업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들의 투자 분위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김 한양대 교수는 “기업에 대한 사고방식만 바꿔도 좋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동철 KDI 선임연구위원도 “보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ㆍ환율 등 불안한 대외요인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분석도 많았다. 내외수 복합불황이 단순이 기우(杞憂)만은 아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 금융연 거시경제팀장은 “내년 세계경기 침체가 가시화되기 전에 정책당국이 미리 해외 부문에 대한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