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그때 그들은 뭘 했는데

李世正 산업부 차장대학졸업당시 한국IBM과 국내 재벌그룹에 함께 합격해놓고 진로를 고민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결국 국내 재벌그룹을 택했다. 보수가 많지만 험한 경쟁을 헤쳐나가야 하는 외국 기업의 생리에 적응할 자신이 없었던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그는 웬지 외국 기업에 들어가는게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종속이론, 반미 주장속에서 보내온 대학생활탓인지 외국 기업에 들어가는게 내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는 구조조정태풍은 그럭저럭 피해왔지만 IMF이전보다 봉급도 줄어들고 이래저래 풀이 죽은 모습이다. 차라리 외국 기업을 선택했다면 지금쯤 어느 기업에서나 환영받는, 나름대로의 전문가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른다는 푸념을 하면서. 지난해 변호사를 하던 친구가 공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이 친구는 그동안 줄곧 재야(在野)변호사로 활동해오다 뜻한 바 있어 공직에 지원했다. 그러나 당초 이 친구가 희망하던 자리는 후배 변호사에게 돌아갔다. 국내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미국 변호사가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 친구는 그래도 공직에서 일해보고 싶어 후배보다 낮은 직책을 받아들였다. IMF를 계기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게 이른바 전문가 우대풍조다. 외국에서 공부한, 외국 기업 및 금융기관에서 근무한, 외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각계 각층에서 환영받고 있다. 외국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금융감독당국의 책임자로 발탁되고 은행장 자리가 비면 늘상 외국 금융기관의 책임자였던 사람들이 물망에 오르곤 한다.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을 뿐아니라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체득(體得)한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같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출발 동기(動機)야 어쨋든 외국 기업에 근무한 사람들이 끊임없는 경쟁속에서 척박하게 살아와 상대적으로 자기계발에 열심이었던 만큼 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게 일반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 다소 지나친 점이 없지 않다. 국내 기업이나 금융기관에서 근무해온 사람들은 일단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사람으로 치부되는 실정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개념조차 아직 명확하지 않은데. 특히 부실해진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아예 사람 취급도 못받는 상황이다. 최근 외환은행장 선임과정에서 감독당국이 외환은행 출신들은 은행장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던 점도 이같은 논리의 일환으로 보인다. IMF를 불러온게 기존의 잘못된 관행,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온정주의, 성과와 능력을 엄밀하게 평가하지 못했던 조직의 비효율성 등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기존 조직의 모든 구성원을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획일적으로 재단하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 요즘 관가에서 말이 많은 개방형 공직 임용에서 또다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걱정이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해온 사람들이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에는 더 밝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IMF로 밀려온 고통의 과정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고통의 터널속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해왔던 사람들이 기존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하는 것은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껴지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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