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가 R&D전략 다시 짜자] (3ㆍ끝) 신기술 사업화

김기수 아이세스 사장은 세계 초일류 기술을 개발하고도 마음이 편치 않다. 김 사장이 개발한 것은 바로 `광섬유 센서`로 다리, 교량 등 건축물의 붕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콘크리트에 센서를 넣거나 아예 건축물 외벽에 부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손쉽게 안전을 진단할 수 있다. 김 사장은 정부의 연구개발(R&D)자금을 얻어 이 센서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개발된 기술을 최종 상품화하는데 필요한 돈을 구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벤처캐피탈 등을 통해 자금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기술거래소를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지만 자본을 대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고민은 비단 김 사장에게만 있는 일은 아니다. 상당수 우수인력이 정부의 R&D자금으로 기술개발에 성공해도 상품화에 필요한 자금을 얻지 못해 애를 먹는다.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에 대한 불신풍조가 아직도 남아있는 데다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해도 투자회수기간이 길 것 같으면 여지없이 투자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특히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 호소해 보지만 정작 `사업화는 민간의 몫`이라며 외면한다. ◇기술의 사업화비율 선진국보다 매우 낮아=기술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R&D 예산을 지원해 개발된 기술 가운데 사업화되는 비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물론 우리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기술의 사업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기술은 뛰어나더라도 시장성이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의 사업화 비율은 너무 낮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그 비율은 30%에 이른다. 우리의 경우 기술개발에 앞서 기획기능이 취약한데도 원인이 있지만 개발된 기술에 대한 사업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창만 기술거래소 기획본부장은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에 대해서는 간여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면서 “기술의 사업화도 정부의 지원대상에 포함시켜야 우리의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술평가기관도 육성해야=기술의 사업화가 기업, 나아가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려면 기술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능이 확충돼야 한다. 특히 우리의 경우 소수의 전문인력이 대형 R&D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검증이 필수적이다. 한민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평가를 담당하는 전문가 풀(pool)이 부족한 탓에 기술보다는 개별 연구인력이 발표한 논문이나 특허를 평가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단순한 기술의 우수성 뿐만 아니라 시장가치도 평가할 수 있는 인력이나 기관이 늘어나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래야 은행이 신용평가를 바탕으로 대출을 결정하듯이 기술평가인력 또는 기관의 평가를 바탕으로 특정기술에 필요한 사업화 자금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예산 늘려 민간참여 확대해야=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기술평가는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산업기술평가원(ITEP) 등 정부산하기관이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은 주로 기술의 우수성 여부만을 평가할 뿐 기술의 상업성, 시장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역할을 수행할 민간기업도 없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신규 산업의 육성을 맡듯이 이 분야에서도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가 R&D예산 가운데 일부를 평가분야에 고정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정부가 R&D 예산 가운데 일부를 시장성 평가 등의 명목으로 배정하는 동시에 민간 평가기관을 육성할 경우 이공계 인력확충 등을 통해 과학기술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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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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