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괴로운 산업은행

8개그룹에 20조 물려… 구조조정 여력 고갈<br>조선·건설·해운사 등 거래기업 대부분 부진한데<br>엎친데 덮친격 동양시멘트 자금지원까지 나서야<br>경기침체 계속되면 BIS비율 큰 폭 하락 우려


"정책금융의 맏형 역할을 하는 것까진 좋은데 거래 기업들의 상황이 약속이나 한듯 좋지 않아 걱정입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산업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가 건넨 말에는 현재 산업은행이 겪는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다. 산은은 현재 STX그룹을 포함해 총 8개 주채무계열의 주채권은행으로 이들 기업에 물린 돈만 20조8,000억원이다.


최근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조선ㆍ건설ㆍ해운사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동양그룹 사태는 고민 많은 산은에 또 하나의 혹을 붙여준 셈이 됐다. 말 그대로 괴로운 산은이다.

30일 금융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산은은 ㈜동양ㆍ동양인터내셔널ㆍ동양레저 등 부실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함에 따라 약 3,000억원의 여신을 보유한 동양시멘트에 대해 자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ㆍ농협 등과 동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동양시멘트가 동양그룹의 뿌리기업인 데다 그나마 재무 상태가 양호한 상황이라 그룹 측이 지원을 요청하면 이를 거절할 명분이 부족하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산은은 동양레저ㆍ동양인터내셔널 등 부실 계열사들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등으로 정리가 되면 거래처에 한해 자금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면서 "채권단의 의견 조율을 거치면 자율협약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하지만 문제는 산은이 부실 기업을 구조조정할 수 있는 여력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은은 지난 3년간 1조원 안팎의 순이익을 꾸준히 낸 결과 최근 STX그룹이 크게 흔들려도 이를 흡수할 수 있었다. 올 상반기 STX그룹 대손충당금과 회사채 손실 등으로 8,0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떠안으며 10개 은행계 금융지주 회사가 적립한 대손충당금(1조2,000억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4,336억원 적자로 선방했다. 하지만 STX 그룹 외에 나머지 7개 주채무계열 중 한두 곳만 더 쓰러지면 산은의 자본 건전성은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산은은 8개 주채무계열 중 STXㆍ금호아시아나ㆍ한진ㆍ동부 등 4개 계열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해 운영 중에 있다"면서 "만일 경기 침체가 지속돼 동 계열 여신의 일부만 부실화되면 산은의 자기자본비율(BIS비율)은 큰 폭으로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산은이 올해 말부터 강화된 금융 규제(바젤Ⅲ) 시행을 앞두고 BIS비율 상승을 목적으로 후순위채권 발행을 늘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추가적인 이자 부담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에 후순위채권을 발행해야 보완자본으로 인정돼 BIS비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산은의 BIS 자기자본은 17조800억원, 위험가중자산은 125조2,100억원으로 BIS비율이 13.64%이지만 후순위채권 효과를 배제하면 BIS비율은 12.68%까지 떨어진다.

금융당국이 산은법 개정안에 산은의 기업공개(IPO) 조항을 넣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정책금융 맏형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산은이 계속된 기업 부실로 고민이 클 것"이라면서 "결국 경기가 나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