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프랑스 반이슬람 정서 확산… 거세지는 극우 물결

FN, 올 지방선거서 3위 바람몰이<br>경제난·사르코지 추락등 호재로 당수 르펜 대선 지지율도 첫 1위<br>"엥똘레랑스 국가 될라" 불안감속 "인기 일시적 현상" 회의적 시각도


'똘레랑스(관용)' 의 나라 프랑스에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주의)'를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이 다시 거센 입김을 뿜어내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장 마리 르펜 당수가 사상 처음으로 결선투표에 진출해 파란을 일으킨 후 한동안 주춤하나 싶더니 올해 들어 빠르게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다. FN은 이달 초 실시된 대선 여론 조사에서 공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지난 6일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앵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버지 르펜에 이어 당수직을 물려받은 마린 르펜은 23%의 지지율로 사상 처음 1위에 올라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FN의 '살아있는 전설' 아버지 르펜도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오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지방선거에서도 열풍은 계속됐다. 지난 20일과 27일 실시된 1, 2차 지방 의회선거에서 FN은 제 1야당 사회당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끄는 대중운동연합(UMP)에 이어 3위를 기록해 UMP를 턱 밑까지 추격했다. 프랑스 정계에서는 이러다가 프랑스가 '엥똘레랑스(비관용)' 국가가 되는 것 아니냐며 극우정당의 급부상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FN에 대한 지지도가 이처럼 파죽지세로 치솟는 것은 프랑스를 둘러싼 대내외 상황이 FN에 유리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피부색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관용을 베풀도록 교육 받아온 프랑스인들은 친(親)나치 발언을 일삼는 FN에 여전히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이슬람정서는 '악마'로 인식되던 FN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 파리 폭동 사태의 주범이 이슬람 청년들이라는 주장이 퍼지면서 무슬림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과 속지주의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했던 FN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프랑스 극우주의 전문가인 장 이브 카뮈는 국민전선이 반이슬람주의를 이용해 포퓰리즘 정치를 펴고 있다고 진단했다. 프랑스의 경제난도 FN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10%대에 육박하며 청년실업은 25%를 넘는다. FN은 이 같은 높은 실업률이 무슬림과 동유럽 이주민들이 프랑스인들의 일자리를 가로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친(親)기업 반(反) 노조를 경제 강령으로 채택하는 FN의 지지 계층이 되레 노동자 집단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박재정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프랑스 극우정당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우파성향의 소기업인, 소상인들이 주를 이뤘던 FN 지지계층이 노동자 계층과 취업준비 중인 젊은이들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지난 95년 대선에서는 프랑스 실업자 중 25%, 노동자의 30%가 르펜에게 표를 던졌다. 1997년 총선에서도 40세 미만 젊은 노동자들의 FN 지지율이 47%에 이르며 '노동자 르펜주의' 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보수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FN이 반사 이득을 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르코지는 지난 2007년 취임해 친기업 행보와 집시 추방 등의 정책을 펼치며 잇단 사생활 잡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유권자들로부터 꾸준한 지지를 받아왔다. 특히 올해 초 국민연금법 개혁을 기어이 관철시키며 보수의 리더로 부상하는 듯 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는 중동 사태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프랑스의 무기력한 모습에 실망한 보수 유권자들은 사르코지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프랑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미국에 맞서 무기를 증강하고 아프리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샤를 드골 대통령 시절의 '강력한 프랑스'를 그리워한다. 그 틈을 파고 든 것이 FN이다. 마린 르펜 FN 당수는 "FN은 늘 '강한 프랑스' 건설을 주장해 왔다"며 "사르코지는 '강한 프랑스'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했다. 사르코지 추락이 FN에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는 유럽 대륙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유로존의 재정적자 문제도 FN 열풍의 요인으로 꼽았다. 신문은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돈으로 그리스나 아일랜드에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유럽연합(EU)과 유로존 가입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FN은 프랑스의 정체성이 훼손된다며 프랑스의 EU 가입과 EU 헌법 제정에 줄곧 반대해 왔다. 일각에서는 프랑스인들의 '정치적 피로감'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프랑스는 지난 1958년 제 5공화국 수립 이후 중도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이 번갈아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중도'는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좌파 정권이 친이민자 정책을 펴면 뒤이어 우파 정권이 제동을 걸고, 다시 반발이 거세지면 한 발 물러서는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사회 혼란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위마니테는 "프랑스인들은 중도 우파와 좌파가 지난 50여 년 간 이민자 문제를 놓고 소모전을 벌였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 대안 세력으로 극우정당인 FN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FN의 열풍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FN이 낙태 금지, 동성결혼 금지 등 시대착오적 공약으로 여성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데다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극우 정당의 부상을 '위험'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 진보지 르 몽드는 "FN의 선전은 반이슬람정서와 맞물려 사르코지 지지표가 대거 이탈하면서 생겨난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이번 지방 선거의 실질적 승리자인 사회당이 다음 대선에서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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