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원자재값 급락 틈 타 사재기 세력 등장

"저유가, 전략적 비축 기회로"

中, 이달만 1,800만배럴 매집

폭락장세 이어 온 구리시장선 英 헤지펀드 한곳이 80% 싹쓸이

매점매석 인한 시장 혼란 우려


원자재 가격이 급락한 틈을 타 국제시장에 '사재기' 세력이 등장했다. 국제원유시장에서는 최근 배럴당 80달러선을 넘나드는 가격 약세를 노려 중국이 매집에 나섰다, 구리 시장에서도 영국계 헤지펀드가 매점매석을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국영 중국천연가스공사(페트로차이나·CNPC)의 자회사인 중국국영석유회사(CNUOC)는 이달 들어 싱가포르 공개시장에서 원유 36카고(1카고=약 50만배럴)를 사들였다. 1,800만배럴 상당의 원유를 단기간에 집중 매입한 것으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치에 해당한다고 싱가포르 트레이더들은 전했다. 지난 6~9월 싱가포르 시장을 활용한 중국의 원유 매입량이 월평균 3카고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할 때 이달 들어 이례적인 매집에 나선 셈이다.


국제원유시장은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장중 배럴당 80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등 가파른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씨티그룹·도이체방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중국 경기부진을 이유로 최근 잇따라 유가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며 원유시장의 암흑기를 예고한 바 있다. 실제 이달 들어 중국의 원유 수요는 전년 대비 2% 늘어난 데 그쳐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폭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수요가 바닥을 기는 여건에도 중국 당국이 이례적으로 대규모 원유 확보에 나서자 트레이더들은 "중국이 가끔 저가매수 기회를 활용하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로 매입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현재의 유가 하락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고 WSJ는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 당국이 올해의 저유가를 전략적 원유 비축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적정 권고량(수입분 90일치)에 비해 중국의 원유 비축량(수입분 30일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원유 저장량을 이번 기회에 대폭 늘려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베른슈타인연구소의 닐 베버리지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저가매수로 원유 비축에 나서고 있다"며 "최근의 글로벌 원유 수요 부진을 만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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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장세를 이어온 국제구리시장에서도 싹쓸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WSJ는 복수 트레이더들의 말을 인용해 단일 매수세력이 최근 몇 달 사이 수차례에 걸쳐 런던금속거래소(LME)가 비축한 구리를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전체의 50~8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들의 매입량은 미 뉴욕 '자유의 여신상'에 들어가는 구리 양의 1,700배 규모로 미터톤당 6,730달러인 이날 거래가로 환산하면 최대 8억5,000만 달러(약 8,920억원)어치나 된다.

LME가 해당 매수자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트레이더들은 런던을 기반으로 한 헤지펀드 '레드카이트(Red Kite)'의 소행으로 확신한다고 WSJ는 전했다. 원유선물투자 실패로 1993년 도산한 독일 메탈게젤샤프트사 출신의 마이클 파머, 데이비드 릴리가 2004년 설립한 이 헤지펀드는 구리를 비롯한 금속 거래를 전문으로 하며 자산운용 규모는 23억달러에 이른다.

'구리 박사(Dr Copper)'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경기선행지표로 활용되는 구리 가격은 글로벌 경기부진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현재 구리값은 2014년 첫 거래일에 기록한 올해 최고가보다 8.9% 하락한 상태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처럼 몸값이 낮아진 구리를 레드카이트가 최근 대거 사들여 향후 시장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익명의 한 애널리스트는 "구리 공급이 부족해질 때에 맞춰 이들이 가격흥정에 나서면 구리값이 폭등할 수 있다"며 "(이를 제외하고는) 원자재 저장량의 70% 이상을 특정 세력이 소유할 합당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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