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기업 계열 증권사간 회사채 물량 교환(바터) 행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신문이 2일 회사채 발행 시장의 큰손으로 꼽히는 삼성그룹과 SK그룹, 신한금융지주의 지난해 무보증회사채 발행 관련 공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총 2조6,4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삼성그룹은 64.02%에 달하는 1조6,900억원의 물량을 신한금융투자(32.58%)와 SK증권(31.44%)에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금융지주도 총 19회에 걸쳐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삼성증권과 SK증권을 빠짐없이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고 이를 통해 전체 발행물량(2조5,400억원)의 60%에 육박하는 1조4,400억원을 두 증권사에 나눠줬다. 또 SK그룹은 전체 4조1,400억원의 발행물량 중 40%에 육박하는 1조5,250억원을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에 배정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회사채 인수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올 들어서도 이들 3사의 물량 밀어주기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SK그룹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와 SK에너지는 대표주관회사로 모두 삼성증권을 선정했고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역시 대표ㆍ공동주관회사로 SK증권과 신한금융투자 2곳만을 선정했다. 신한지주는 1,000억원 규모의 무보증사채를 발행하면서 주관사로 삼성증권을 단독 선정했다.
채권 발행 시장의 경우 금융투자업규정과 인수업무 규정 등 관련 규정을 통해 계열 증권사가 회사채 발행을 대표주관하거나 최대 물량을 인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열사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타 업권과 달리 회사채 시장에서는 계열 증권사를 통해 발행 주관사 계약을 주고 받는 바터 행위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는 포스코, KT, 롯데 등 채권 발행 물량이 많지만 계열 증권사가 없는 기업들과 비교하면 더욱 뚜려하게 나타난다. KT의 경우 지난해 발행 물량(2조1,700억원)의 17.51%를 대우증권에 넘겼고 삼성증권과 우리투자증권에 각각 11.06%, 10.60%를 배정해 고른 모습을 보였다. 포스코도 지난해 발행 물량(1조6,000억원)의 16.25%를 한국투자증권에 넘겨줬고,KB투자증권(15.0%), 우리투자증권(12.50%), 삼성증권(11.88%) 등 다수의 증권사가 10% 이상의 물량을 받아갔다.
이와 관련 한 대형 증권사의 투자은행(IB)업무 관계자는 “보통 물량 교환을 하려면 그룹사 전체의 회사채 발행 규모나 신용등급 수준이 유사해야 한다”며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은 회사채 시장의 큰손으로 꼽혀 이들간 물량 교환을 이루기도 쉽다”고 귀띔했다.
내달부터 적용되는 ‘금융투자회사의 기업실사 모범규준’ 에 따르면 금융투자회사는 회사채 물량을 받는 조건으로 다른 금융투자회사에게 주관계약을 양보하는 행위 등 주관시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할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거래가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개정안 도입 이후에도 이 같은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분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인수ㆍ주관회사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신설된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업계 스스로 이 같은 관행을 고칠 수 있도록 주의를 주는 의미가 있다”며 “하지만 사실상 계열사를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물량교환 행위는 심증은 있어도 물증을 찾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적발이 어렵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