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조상인기자의 술술-미술] 미술의 경제학

갤러리 둥지 틀면 부동산도 뜬다

요즘 가장 '뜨는 거리',이른바 유행에 민감한 이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경리단길이 있는 이태원부터 대사관길로 통하는 동빙고 등 용산지역을 꼽을 수 있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미술'이 먼저 부흥을 내다봤다는 점. 10년 전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할 때 만해도 이태원이 새로운 '아트밸리'를 형성할 것이라 기대한 사람은 적었다. 2012년 경리단길 한쪽의 지하 노래방을 손봐 개관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최근 급증한 물좋은 밥집·찻집보다 한발 앞서 목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같은 해 말 대사관길에 문을 연 '스페이스비엠'은 30~40대 유학파가 선도하는 신흥 부유층의 '아는 사람만 다니는 길'에 먼저 터를 닦았다.

갤러리가 들어서자 상권이 살아났고 더 탄탄해졌다. 그래서인지 꽤 많은 미술계 인사들이 "화랑 사업은 부동산 사업"이라고까지 말한다. 열악한 국내 시장에서 작품 거래 만으로 버티기가 어렵다는 뜻도 있으나 미술이 둥지 트는 곳의 부동산이 어김없이 따라 뛴다는 데 방점이 찍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랑가 변천사를 보면 당대 '뜨는 거리'가 한눈에 보인다. 1970~1980년대 종로 인사동에는 고미술 전문 화랑을 비롯해 지금의 갤러리현대인 '현대화랑'부터 동산방화랑·노화랑·선화랑과 예화랑·국제갤러리·학고재·가나아트 등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볼거리 많은 곳으로 부상한 이곳은 현재 넘볼 수 없는 높은 상가임대료를 자랑한다.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도 남보다 먼저 자리잡은 것은 1980년대에 이전한 표갤러리·예화랑을 비롯해 어반아트·청작화랑 등이었다. 마찬가지로 사간동·소격동을 아우르는 삼청로 지역의 북촌(北村)도 갤러리현대·국제갤러리·학고재 등이 휑하던 경복궁 길 건너에 문을 열었고 금호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 아라리오갤러리·이화익갤러리·갤러리인 등과 함께 미술지구를 형성했다. 지난해 기무사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하면서 이 지역 부동산은 절정으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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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는 청담동, 2010년 이후로는 통의동·창성동을 아우르는 서촌(西村)으로 화랑들이 자리를 옮겼다. 특히 서촌에는 터줏대감 진화랑과 대림미술관을 위시해 갤러리시몬·아트사이드·리안갤러리 등 굵직한 화랑과 사루비아다방·보안여관 등 대안공간을 비롯해 한옥사진갤러리 류가헌, 한두평 남짓한 소규모 전시공간 등이 잇따라 생겨났다.

용산의 아트밸리는 한남동과 이태원을 아우른다. 리움에서 하얏트호텔 방면으로 백해영갤러리가 있고 표갤러리 본점이 있다. 리움 건너편에 대안공간적 성격의 아마도예술공간·테이크아웃드로잉과 작은 전시장들이 생겨났고 상권에서 먼 듯했던 이 골목이 '멋쟁이거리'가 됐다. 이에 힘입어 대림미술관은 최고가 아파트인 한남 더힐 정문에 본관보다 더 큰 분관을 내년 개관예정으로 공사중이며, 실험적 전시공간으로 '구슬모아당구장'을 인근에 운영중이다. 이 지역에도 지난 2~3년 사이 화랑들이 들어섰다.

이달 초 '세계 200대 컬렉터'로 꼽히는 김창일 아라리오회장이 제주시 구도심에 미술관 3개관을 개관하면서 쇠락했던 인근지역 부동산에 훈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작품 안목 뿐 아니라 사업 수완까지 좋은 김 회장은 버려졌던 극장·모텔 등을 인수해 열 배 이상의 가치를 갖는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일찌감치 '아트밸리' 조성을 계획해 미술관 뿐 아니라 인근 상가건물도 여럿 매입했다. 미술이 가져올 경제선순환을 내다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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