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따뜻한 아랫목

박영선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지난 99년 초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경기의 현실은 차디찬 아궁이에 불을 넣는데 아랫목에서는 약간 훈기를 느끼지만 윗목은 여전히 찬 것과 같다”며 이른바 ‘아랫목-윗목론’을 제기했다. 5년이 지난 지금 김 전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윗목의 한기는 더 냉랭해지고 아랫목의 훈기는 열기로 바뀌고 있다. 무엇이 잘못돼 아랫목의 열기가 윗목으로 퍼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고용창출이 적고 부품의 해외조달 비율이 높은 산업이 선도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윗목과 아랫목이 단절된 것을 무시하고 거시지표 중심으로 경제를 운용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생계비조차 못 버는 근로 빈곤층과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배 미만인 ‘잠재적 빈곤층’이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96년 2.9%, 3.94%에서 2000년에는 7.1%, 4.68%로 급증했다.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심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같은 기간 0.29에서 0.35로 급등했다.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각하다. 양극화 심화와 아파트 투기가 발생하기 이전인 95년 통계만 봐도 금융자산 지니계수는 0.65, 부동산 중 건물 등의 지니계수는 0.66, 토지는 0.90으로 극심한 불평등을 보인다. 금융자산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의 격차가 무려 62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소득재분배에 있어서 재정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스웨덴과 미국의 세전ㆍ세후 지니계수의 변화율을 보면 각각 101%, 23%에 달하나 우리나라는 세전 0.37, 세후 0.35로 변화율은 4.5%에 불과하다. 정부의 사회보장 지출이 적고 고소득자의 소득 파악이 부실해 조세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고착되기 쉽다. 윗목도 따뜻해지려면 조세형평성을 제고하고 재정의 사회복지 지출을 늘려 일시적으로 경쟁에서 낙오된 그룹이 다시 정상적 생산ㆍ소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빈곤층이 1% 늘어날 때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0.22%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GDP를 생산성에 요소투입량을 곱한 것이라고 하면 정상적인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빈곤층이 늘어나면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지 않는 이상 GDP는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복지 예산확대는 ‘우회적 성장 전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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