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미국, 일본식 불황 빠지나" 불안 확산

경기부양책·유동성 공급조치도 효과없고<br>고용시장 불안·소비지출 감소로 우려 커져<br>월가는 이미 "경기침체 언제까지…" 걱정


미국 경제가 지난 1990년대의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이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유동성 공급 조치가 별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백약이 무효’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미 월가 논쟁의 초점은 경기침체가 시작됐느냐가 아니라 침체의 정도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 미국 고용시장의 불안과 소비지출 감소를 보여주는 지표들이 최근 잇따라 나오면서 대다수 이코노미스트들이 경기침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월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동안 월가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주택 부문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불안요소가 없어 경기둔화가 오더라도 가벼운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고용시장 불안은 물론 주택가격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금융시장 또한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등 악재가 계속되면서 어두운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리처드 버너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에 대한 논쟁의 초점이 얼마나 깊고 오랫동안 (경기침체가) 계속될 것인가로 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따라 올해 중반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된 뒤 재하강하는 ‘더블딥(double-dip)’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부양책의 약발은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듀크대가 잡지 CFO매거진과 함께 지난 7~12일 1,073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미국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이 60%로 나와 지난달의 조사 때(45%)보다 크게 증가했다. 응답자의 90%는 ‘미 경제가 내년에도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CFO들이 경기상황을 나쁘게 본다는 것은 향후 기업의 돈줄을 꽉 쥐겠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투자와 소비침체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와 함께 물가불안이 심해지면서 FRB의 행동반경이 좁다는 것도 문제다. 미 재무부 5년 만기 물가연계채권(TIPS) 수익률이 1997년 채권 도입 이후 처음으로 이달 1일 마이너스로 돌아선 후 11일에는 -0.199%까지 떨어졌다. 이는 정부가 물가통제에 실패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할 것으로 투자가들이 본다는 의미다. 월리엄 화이트 국제결제은행(BI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오늘날 정책결정자들이 경제성장과 가격 안정, 금융시장 안정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 겪는 어려움은 2차 세계대전 이래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아직 FRB의 생각은 굳건하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인하 및 유동성 공급 등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일본식 장기불황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긴급 유동성 대책효과가 하루 만에 사라지면서 보다 더 급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화정책만으로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제약요인과 리스크의 광범위한 확산이라는 문제 때문에 불황을 예방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이와 관련,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처한 상황은 1990년대 일본과 ‘양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상당히 유사하다”며 “유동성 부족, 유효수요 부족, 신용불안 등 세 가지 악순환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미국 경제를 좀먹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최수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