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情과 訣別

한국에서 20년을 넘게 근무한 어느 외국인은 처음 우리말을 공부할 때 「책은 BOOK」하는 식으로 우리 단어를 익히면서, 「정」이라는 우리말 단어에 대해 큰 혼란을 겪었다는 체험담을 소개했다. 「정」이란 낱말의 의미를 「AFFECTION」이나 「SYMPATHY」같은 어떤 한 영어단어로는 잘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애를 먹었다며 문화적 차이때문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시골 장터에서 실랑이를 하다시피 흥정을 치르고서도 끝내는 한줌씩 더 얹어 주는 넉넉한 인심이라든지, 내 집 곳간이 바닥나고 있어도 찾아온 손님은 극진히 대접하던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은 「정」의 기본이고, 학연이나 지연 같은 것도 따지고 보면 「정」에 이끌려 일어나는 일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정」의 미덕(?)을 버리지 않고서도 반도체나 조선처럼 세계 1, 2위를 다투는 산업국가로 부상하게 된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다. 지난 97년말 맞은 외환위기는 법과 규칙의 철저한 적용을 토대로 발전해 온 서구식 자본주의와는 달리 「정」이 앞서는 환경 속에서 덩치를 키워온 우리식 산업화의 모순이 한꺼번에 노출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환란의 위기를 비교적 잘 극복해 가고 있는 지금에도 신문지상을 통해 주먹만한 글자의 사건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내용은 『안방에 가서 들어보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서 들어보면 며느리 말이 맞다』는 옛 속담처럼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거나 누군가가 납득할 만 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이렇게 반복되기만하는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나만 재수 없어 손해 봤다』는 생각을 『내가 법을 지키지 않아 손해 봤다』는 생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공정하고 엄격한 법과 제도의 운영이다. 지난 1년여의 피나는 노력과 엄청난 희생 위에 최근 주요 경제지표들이 점차 호전되어 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희망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적인 회복이 금융기관을 비롯한 기업들의 1차적이고 하드웨어(HARDWARE)적인 구조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궁극적인 위기의 극복은 소프트웨어(SOFTWARE)적인 구조조정, 즉 의식의 변화로 법과 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JWKIM101@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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