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름 덜었나 싶었던 물가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공공요금의 무더기 인상이 예고되어 있는 때에 각종 생필품값이 슬금슬금 오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숨죽인채 기회만 보고 있던 장바구니 물가가 공공요금 인상결정을 계기로 레이스에 뛰어든 꼴이다.시내버스 요금이 이미 오른데 이어 7월부터 전기요금이 5.9%, 지하철 요금 12.5%(50원), 철도요금 7∼8%정도 인상된다고 한다. 우편·의보료 인상도 대기중이다. 이와 때맞춰 라면·채소값이 뛰고 음식·미용료 등 개인 서비스요금이 은근 슬쩍 오르고 있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음식료품값은 낮추고 교통요금은 올려 왜곡된 물가구조를 고쳐나가겠다고 했으나 현실은 교통요금과 함께 음식료값이 같이 올라 물가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물가가 안정되어 있는 듯 하니까 공공요금을 올려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지수물가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보다 안정되어 있고 이같은 추세라면 연말 억제폭 4.5%는 무난하게 지킬 수 있으리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정책이 잘 되어서가 아니라 장기불황의 희생위에서 물가안정이 이뤄지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저성장의 고통속에서 물가안정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실업이 늘어나면서 소득이 감소하고 있다. 소비감퇴에 따라 과잉경쟁이 일어나고 유통과정에서 가격파괴가 확산되고 있다. 개방에 따라 농축수산물의 대량반입으로 값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은 희생위에서 농축산물 가격이 안정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공공요금도 인상요인이 있으면 불가피하게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물가 상승이 공공요금 인상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파급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처럼 안정된 분위기를 흐트러놓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과 민간기업은 저성장 고실업과 구조조정의 고통을 안고 있는데 정부와 공공기관이 앞장서 가격 올리기를 한다면 정부의 안정정책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허리띠 졸라매기를 정부가 솔선해야 하는 것처럼 물가안정 의지도 정부와 공공기관이 솔선해야 한다.
특히 선거철을 앞두고 행정공백도 빚어지는 때다. 지수물가가 자리 잡힌듯 하다고 해서 무관심하거나 마음놓고 인심 쓸 때가 아니다. 공공요금 인상에 신중해야 하고 생필품 가격의 감시기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