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일본 최대 식음료기업인 산토리와 기린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병을 논의했다. 양사의 협상은 의견 차이로 결국 결렬됐지만 당시 창립 111년(산토리)과 125년(기린)을 맞은 거대 기업들이 합병을 논의하면서까지 돌파하려 했던 위기 중 하나는 일본의 인구 감소였다. 인구가 줄면서 장기적으로 내수시장이 위축돼 지속 가능한 경영이 위협 받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50대 이상을 중심으로 한 소비 위축이 이미 현실화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은 72.9%로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 위축은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 민간 경제연구원들의 분석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비성향의 하락을 고령층이 주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소비성향 추이를 봤을 때 40대 이하 연령층의 가구주보다 50대 이상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강 연구원은 "50대 이상 연령층은 평균수명이 길어졌지만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 등에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고 공적연금 보장마저 부족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우리 경제의 장기적 추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내수시장이 위축되면서 가장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점쳐지는 업종은 제조업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서 30.72%의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이 오는 2030년 26.25%, 2060년 16.94%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측했다. 인구 감소로 의식주 관련 수요가 위축되면서 제조업 중에서도 소비재 부문의 비중 축소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관측됐다. 국내 소비재 부문의 경제 비중은 2010년 4.08%에서 2030년 2.55%로 줄어드는 데 이어 2060년에는 불과 1.23%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이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는 부정적인 연쇄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택 수요는 2045년을 전후로 매년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2045년의 경우 전년 대비 0.07~0.36%의 감소세를 보이는 데 그치겠지만 2060년에는 1% 이상의 감소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보건사회연구원의 전망이다.
농림어업과 사회기반시설(SOC)산업 역시 수요 감소가 진행될 것으로 점쳐졌다. 산업연구원은 정보기술(IT) 부문의 경우 고령화로 빠른 시장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는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생산성 저하, 비용 상승 등의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삼식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구 감소가 일단 시작되면 그 파급효과는 오래 누적된다"며 "아직 상황이 심각하지 않을 때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서비스업 육성이나 새로운 인구구조에 맞는 시장 발굴, 해외시장 개척 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일례로 고령인구를 대상으로 한 의료·복지서비스 등의 시장 전망은 매우 밝다. 또 IT 같은 분야는 국경 없이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특징을 살려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랫동안 내수시장에 만족해왔지만 해외에서의 비(非)통신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기간산업인 통신으로 해외에 진출하기는 어렵지만 인수합병(M&A)이나 플랫폼 사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진출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