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0월 6일] 디자인 사다리 올라가기

삼성ㆍLG 등 우리 기업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하기도 한 세계적 디자인 컨설팅 기업 IDEO는 업종 간 경계를 넘나드는 전략 컨설팅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4년 IDEO는 식품회사인 크라프트(Kraft)의 물류 시스템 개선을 맡았는데 재고비축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한 결과 매출이 162% 향상되고 신제품 전개에 걸리는 시간을 50% 이상 단축시키는 효과를 끌어냈다. IDEO 사례는 1990년대 이후 디자인의 가치가 종전의 ‘외관 개선’에서 ‘혁신 전략’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이러한 변화를 집약해 덴마크 디자인센터는 ‘디자인 사다리(Design Ladder)’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디자인 사다리는 총 4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제일 아래는 아예 ‘디자인이 없는’ 수준이고 그 위에는 가치사슬 마지막에서 외형을 꾸미는 ‘외관꾸미기로서의 디자인’이, 다음 단계에는 처음부터 디자인을 고려한 기획ㆍ생산ㆍ마케팅이 이뤄지는 ‘과정으로서의 디자인’이, 마지막 최상위에는 디자인 중심으로 혁신이 이뤄지는 ‘전략으로서의 디자인’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4단계 중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최근 우리 기업들이 속속 디자인 경영을 도입하는 한편 서울시가 ‘2010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되는 등 어느 때보다도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디자인을 제품이나 공공시설물의 외관 꾸미기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우리가 디자인 사다리에서 아직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뿐 아니라 공공 서비스에도 디자인을 도입해 세금징수 시스템을 납세자 친화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미국이나 에너지ㆍ교통ㆍ보건 등 사회문제 해결에 디자이너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영국에서 보듯 ‘전략으로서의 디자인’과는 아직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디자인은 단순한 외관 꾸미기를 넘어서 창의적인 문제해결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디자인에 눈뜨기 시작한 중국도 지방정부가 경쟁적으로 디자인 클러스터 조성에 나서면서 단숨에 디자인 사다리를 몇 단계나 뛰어오를 기세다. 지난 9월22일 신성장동력기획단이 22개 미래 신성장동력의 하나로 디자인을 제안한 것은 외관 꾸미기가 아니라 창조와 혁신의 매개자로서 디자인의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민간과 정부가 디자인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고 디자인 사다리를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는 데 힘을 모은다면 기업과 사회의 문제를 보다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국가의 품격도 높이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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