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戒盈杯)라는 전설적인 술잔이 있다. 조선시대 도공 우명옥이라는 사람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후 방탕한 생활에 빠지다 이를 뉘우치고 계영배를 만들었다는 전설에 나오는 술잔이다.
계영배는 술이 술잔의 8할 이상 넘으면 술이 모두 사라지는 신비한 술잔으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는 교훈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 같은 계영배의 교훈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게 행정도시건설 특별법 통과를 둘러싼 갈등 국면이다.
정치권은 특별법 합의 통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서울시의회는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과 함께 ‘수도분할 저지 범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또 정부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추진하면서 수도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가 술렁이고 있다.
하지만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과연 수도권의 발전을 막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수도권은 과밀화와 집중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으로 성장의 한계를 맞고 있다. 대기업 본사의 91%, 공공기관의 85%, 벤처기업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난 93년 2조9,000억원이던 교통혼잡 비용이 2002년에 12조4,000억원으로 급증했고 환경오염은 OECD의 9배 이상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수도권의 비대화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각종 규제책을 시행하고 있다. 공장총량제가 대표적인 규제이다. 반면 지방은 인구와 자본유출로 빈사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수도권의 재정자립도가 82%에 달하는 반면 지방은 45%에 불과한 게 이를 말해준다.
결국 수도권이 지속 가능한 질적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양보를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수도권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방안이 되고 지방은 균형발전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반대하는 수도권 이해집단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욕심을 내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칫 계영배가 주는 교훈처럼 지나친 욕심으로 경쟁력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발전의 한계를 초래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시점인 것이다.
다만 정부는 행정도시 건설 등에 따른 수도권의 공동화를 막기 위한 각종 규제완화 방안을 보다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제시해야만 한다. 그래야 정치적 계산 때문에 행정도시를 건설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