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24일] 한자동맹 & 청어

1370년 5월24일 독일 슈트랄준트. 1년여 전쟁 끝에 평화조약 하나가 맺어졌다. 패배자인 덴마크가 승자에게 안전항행을 보장하며 주요 요새까지 넘겨준다는 내용이다. 승자는 왕도 국가도 아닌 상인. 한자동맹이었다. 한자동맹이 뭐길래 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불평등조약까지 강요했을까. 독일을 중심으로 스웨덴과 덴마크, 지금의 러시아 지역까지 산재한 상업도시들의 연합체였다. 베네치아ㆍ제노바ㆍ피렌체 등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함께 유럽의 경제권을 양분했던 한자동맹이 축적한 부의 근원은 생선. 배가 다니기 어려울 지경으로 많았다는 청어였다. 청어의 수요는 무궁무진했다. 사순절 금식기간과 육류공급이 줄어드는 겨울철의 대체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청어를 잡고 운반하며 소금으로 저장 처리한 후 원거리 무역을 통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돈을 불러들였다. 청어 무역은 염장용 소금 생산업과 운반상자를 만드는 목재산업, 조선업 등 후방산업도 키웠다. 한자동맹은 교역품을 영국산 양모와 플랑드르의 모직 제품, 스웨덴ㆍ러시아 지역의 목재, 함부르크의 맥주 등으로 확대시켰다. 전쟁 비용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돈이 몰릴 수밖에. 한자동맹의 위세를 떨친 슈트랄준트조약은 거꾸로 위기를 불러왔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에 빠진 탓이다. 러시아와 스웨덴 등이 발흥하는 가운데 기득권을 지키려 자유무역을 버리고 보호무역을 택한 점도 쇠락을 부추겼다. 결정적으로 청어의 산란지가 갑작스레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뀌어버렸다. 북유럽의 상권은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넘어갔다. 한자동맹이 초심을 잃지 않고 청어떼가 발트해에 머물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이 독일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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