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류 3.0 K스타일 키워라] <2> 스토리는 콘텐츠산업의 쌀

우리 문화·정서 담긴 이야기 발굴… 한국판 해리포터 만들어야<br>탄탄한 스토리, 문화서 패션·IT까지 파급효과<br>정부 예산 확충·펀드 만들어 산업 육성 잰걸음<br>열악한 작가·외주 제작사 처우 문제 개선 시급


#영화 '반지의 제왕'은 전세계적으로 29억달러를 벌어들이며 주 촬영지인 뉴질랜드의 산업 전반을 바꿔놓았다. 북유럽 게르만족 설화에 기초한 동명의 판타지 소설은 전세계적으로 1억부 이상 판매됐고 다시 영화ㆍ음악ㆍ게임ㆍ공연ㆍ애니메이션ㆍ관광 등 문화ㆍ산업 영역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또 다른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도 판매부수 3억8,000만여권, 영화 관련수입 4조8,000억여원을 포함해 경제적 파급효과가 30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대장금'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몇 줄의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보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며 한류 붐을 일으켰다. 묻혀 있던 이야기의 원형이 어떻게 가공되느냐에 따라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스토리는 문화 콘텐츠 산업의 핵심=한류가 드라마ㆍK팝을 바탕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그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콩 느와르, 일본 J팝처럼 한때의 바람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호감을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호감으로 이끌어내는 '한류 3.0'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홍상표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콘텐츠 산업의 성공은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의 발굴에 달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스토리는 소설은 물론 연극ㆍ영화ㆍ뮤지컬ㆍ발레ㆍ클래식음악ㆍ오페라 등 거의 모든 문화 콘텐츠의 토대가 되고 나아가 패션ㆍIT 등 일반산업의 바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스토리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한국 문화와 정서 속의 이야기 원형을 개발, 스토리 산업의 씨앗으로 삼는 게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기존 한류 콘텐츠는 지나친 상업화와 획일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지난해 2월과 10월 9개국 3,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해외한류 실태조사'에서 지적됐다. 드라마는 멜로 일색이고 K팝은 아이돌 중심의 댄스음악만 쏟아내 식상함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인류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해외에서는 여전히 생소할 한국적 정서와 가치, 문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것은 정부와 업계의 공통된 고민이다. 우리만의 어떤 것을 담아 세계로 쏘아 올릴 화살로 잘 만들어진 이야기, 서사의 힘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 산업에 팔 걷어붙이는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 기관들은 스토리 산업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내년 콘텐츠 산업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8% 증가한 5,146억원으로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잘 활용해 관광ㆍ저작권ㆍ영화ㆍ게임 등으로 다각화(OSMU)하는 것이 목표다. 작업장소 제공과 재교육을 위한 작가지원 창작센터에 대한 지원이 전국적으로 이미 진행되고 있고 내년에는 200억원 규모의 '위풍당당콘텐츠코리아펀드'를 신규 조성한다. '콘텐츠코리아 랩' 예산은 올해보다 늘어난 102억원으로 더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또 2016년을 목표로 콘텐츠 제작 인력 양성을 위한 종합지원기관인 창의인재개발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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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스토리 관련 교육은 영국과 미국 등 콘텐츠 산업 선진국에서는 이미 교육과정에 체계적으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매주 창조적인 사고와 언어능력 개발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학부과정을 제공하는 대학은 영국 내 600개가 넘는다. 미국도 AFI(American Film Institute), USC, UCLA, NYU, 컬럼비아대학 등 스토리텔링을 교육하는 5대 영화 명문학교를 중심으로 유명 작가의 강의, 현장에서의 인턴십 등을 통해 폭넓은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

문체부 대중문화산업 담당 김수현 사무관은 "콘텐츠에서 스토리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지만 선진국과 달리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스토리 관련 업체는 없다시피 하다"고 말했다.

◇스토리 산업 생태계 개선해야=업계에서는 스토리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콘텐츠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스토리작가들이 소속 없이 계약직 형태로 일하고 일부 유명작가를 제외하고는 저임금ㆍ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또 신규 인력이 진입하기에 시장이 작다는 점도 문제다. 영화의 경우 연간 제작편수가 20~30편 내외이고 애니메이션은 이보다 훨씬 적다. 이러한 여건 속 신규 인력 진입이 더딜 수밖에 없고 이직률도 높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기 힘든 상황이다.

김 사무관은 "스토리작가의 경우 심지어 최초 기획자가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수익배분에도 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내년에 표준계약서 개발에 나서는 등 업계 생태계 정상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콘텐츠 다양성과 고급화라는 본래 의도와 달리 방송사 위주의 왜곡된 외주제작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익성을 따지는 방송사가 외주업체에 프로그램 제작을 맡기며 실제 비용의 절반 정도만 주는 경우가 많고 제작사는 이를 간접광고(PPL)와 해외ㆍ온라인 판권 등 2~3차 저작권으로 벌충하는 구조다.

박성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조사연구팀장은 "중소 제작사 입장에서는 당장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단계에서부터 시놉시스만으로 일본ㆍ중국 등 해외 수요의 입에 맞춘 시나리오 만을 양산하고 있다"며 "세트를 짓거나 촬영에 드는 돈이 급하니 미리 제작해두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그나마도 시청률이 좋지 않으면 종영하기 일쑤여서 더더욱 그렇다"고 분석했다.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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