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자치단체가 원로작가와 유명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술인들 사이에서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작가미술관 건립을 두 손 들고 반길 수만은 없는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기는커녕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 미술관 하나 만들까'라는 즉흥적인 발상은 왜 위험할까.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적 가치가 높은 미술작품을 수집ㆍ보존하는 자료관이며, 전문가들이 심오한 작품세계를 탐구하는 연구소며, 시민들의 예술적 소양과 심미안, 창의성을 길러주는 평생학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작가미술관 건립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사에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전시ㆍ연구ㆍ교육ㆍ소장, 보존할 만한 예술적 가치가 높은가 등에 대한 검증과정이다.
문화선진국의 사례를 들어보자. 조지아 오키프는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가진 최초의 여성화가로 유명하다. 그녀는 어떻게 예술세계를 기념하는 미술관을 갖는 영예를 누리게 됐을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선정한 14명의 미국거장 명단에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위대한 화가이기 때문이다.
지자체 작가이름 딴 미술관 유치 열올려
이를 증명하듯 1997년 7월18일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이 개관하던 날, 폭염 속에서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조각의 신'으로 불리는 로댕은 자신의 저택인 비롱관과 작품들을 국가에 기증하는 조건으로 로댕미술관 건립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퇴짜 맞은 이유는 그의 작품세계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미처 끝나지 않았다는 것.
모네를 비롯한 동료예술가들과 언론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프랑스 의회는 1916년 로댕미술관 건립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로댕은 기쁨을 미처 누리지도 못하고 다음해인 1917년 11월17일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예술가도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기가 힘든 문화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지자체장과의 친분이나 전시행정만으로 작가미술관이 설립되기도 한다. 작가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에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국내에 있는 작가미술관 중에서 엄격한 검증절차를 거쳐 설립된 곳이 과연 몇 관이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이름만 빌려왔을 뿐 대표작품이 한 점도 없는 미술관, 예술적 평가를 받지 못한 생존작가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도 버젓이 운영되고 있지 않은가.
예술적 가치 등 엄격한 검증 거쳐야
지자체는 국비와 시비 등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작가미술관 유치와 건립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발의안(김장실 의원 대표발의) 제3장 제12조'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신설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립미술관을 설립하고자 할 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설립타당성 사전평가를 신청하고 문체부 장관은 사전평가를 위해 사전평가심의위원회를 구성ㆍ운영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우리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미술관을 가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작가미술관은 예술가의 전설이 시작되는 곳이다.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순례코스가 되는 작가미술관의 설립을 간절히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