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인물을 고르는 데 사용한 네 가지 기준이다. 그중 하나가 언변이란 것이다. 말하는 품세를 보는 것이다. 말이란 하늘이 유독 사람에게만 내려주신 큰 선물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통해서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남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 대략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내용이 없으면 정당한 평가를 받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말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말을 잘하면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한마디 실언으로 큰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말은 하기에 따라 상대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크나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위력이 큰 만큼 말은 사려 깊게 구사해야 한다.
요즈음 TV를 통해 각종 토론 프로그램을 자주 접하게 된다. 관심 있는 테마를 다룰 경우 필자도 가끔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열심히 지켜보지만 결과는 항상 불만이다.
저급한 토론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어떤 토론자는 화려한 말솜씨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자기의 주장만을 되풀이한다. 상대방의 주장은 안중에도 없다. 사회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얘기만 늘어놓는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면박을 주면서 기선을 제압했다고 흐뭇해 하는 표정이다.
어떤 이는 논쟁의 핵심보다는 상대방의 말꼬리 잡기에 정신이 없다. 대체로 임기응변에 능한 말재주만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이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듯 미리 준비해온 자기 논리만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어느 한 가지라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는 어렵다.
‘왜 하필이면 저런 토론자를 선정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다. 토론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웅변이나 연설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우선 필요하고 쟁점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상대방의 견해차를 좁혀나가는 대화의 과정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시청자들은 화려한 말솜씨를 보기 원하는 게 아니라 어눌할지언정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입보다는 마음으로 말하는 토론자를,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고도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토론자를 좋아한다. 공허한 말장난이 아니라 진지한 의견 교환을 원한다. 토론이 끝났을 때는 모호하던 이슈의 실체가 선명해지고 공감대의 폭이 더욱 넓어졌음을 확인하는 기쁨을 맛보고 싶어한다. 보다 성숙한 토론문화를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