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1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석 달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데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발 내수침체 우려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지난달 말 국내 첫 감염자가 나온 후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 공포'가 결국 기준금리마저 낮춘 것이다. 한은이 이처럼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경제적 쇼크에도 불구하고 8월에서야 뒤늦게 금리인하로 꼬꾸라지는 경기를 잡지 못했던 뼈아픈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력이 훨씬 큰 메르스를 방치해서는 세 차례의 금리인하 효과마저 희석돼 회복의 불씨가 희미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1%대 금리라는 '미지의 길'에서 두 번째 발걸음 내디딘 한은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메르스발 소비 충격 가계부채 부담보다 크다=이주열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메르스 사태의 향후 추이와 파급의 영향이 아직 불확실하지만 경제주체들의 심리와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미리 완화하기 위해서는 선제적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금리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급속히 늘어나는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경중을 비교할 때 메르스 사태 확산에 따른 소비침체 우려가 더 크다는 판단이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는 장기적으로 이어져온 문제인 반면 메르스는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소비위축 정도를 놓고 보더라도 메르스의 영향이 더 크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가 이달 말 해결된다면 국내총생산(GDP) 손실액은 4조425억원으로 GDP의 0.26%에 그치지만 오는 8월까지 이어진다면 20조922억원(1.31%)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인하에는 우리 경제의 회복세를 주도했던 내수의 불씨를 지키는 동시에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수출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환율에는 여러 변수가 작용하지만 금리를 낮추게 되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이번 금리인하 결정은 메르스에 따른 내수위축 우려에 대응하는 측면이 크지만 수출이 부진하고 내수가 회복되고 있는 지표들도 함께 봤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까지 "수출감소는 세계 경제 위축이나 중국의 회복세 지연 등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던 이 총재의 발언을 고려하면 상당한 변화로 인식된다.
다만 이번 금리인하로 급한 불은 끄더라도 올해 경제성장률의 하향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총재는 "지난주부터 모니터링한 결과 서비스업의 소비위축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면서 "한 달 사이에 어떤 다른 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현재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본다면 기존에 예측했던 성장률 전망에 하방 요인이 생긴 점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의 확산 정도에 따라 한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4월 경제전망보고서를 내놓을 당시의 3.1%에서 7월에는 2%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지의 길…추가 인하는 이번이 끝?=이 총재는 향후 기준금리 방향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나오는 모든 지표들은 감안해 결정하겠다"며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인하가 마지막일 것'이라는 뉘앙스도 강하게 풍겼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 버블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면서 "이는 통화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부분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하가 끝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도 추가 금리인하는 부정적이라는 신호가 감지된다. 한은은 "금융안정에 '더욱' 유의하겠다"며 한 달 전 결정문에서 '더욱'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여기서 더 금리를 내리면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금융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달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겠다"는 표현도 "성장세 회복이 이어지고 있다"로 변경했다.
/조민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