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서초동의 한 중개업소 입구 안내판에 반포자이 25평형의 전셋값이 '6억원'으로 적혀 있다. 국토해양부 아파트 전월세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지난 7월까지만 해도 4억7,000만원에 거래됐었다. /이호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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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전셋값이 위험수위에 다다른 가계부실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대출억제책으로 금융권 대출의 문이 좁아진 상황에서 단기간에 많게는 1억원 이상 뛴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세입자들이 신용대출 등 '급전'까지 끌어다 쓸 경우 자칫 가계부도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달 초 전세기간이 만료된 박모(35ㆍ마포구)씨는 집주인이 2억5,000만원이던 전세를 3억5,000만원으로 올리면서 반전세로 재계약했다. 5,000만원은 겨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지만 나머지 5,000만원은 도저히 구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기존 대출과 신규 대출에 대한 이자에다 월세로 나가는 돈까지 합하면 집을 산 것도 아닌데 월급 가운데 절반 이상이 주거비용으로 나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전세난이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키우고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정책을 쓰면 세입자들은 오른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사금융에 내몰리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서는 최근 2년 사이 전세난이 워낙 심화되다 보니 재계약을 할 때 전세보증금을 1억원 이상 올려주는 것이 일반화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당장 목돈이 필요해진 세입자들은 사금융으로 내몰리거나 집주인의 요구에 따라 월세나 반전세로 계약을 연장하면서 주거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고 경제력이 악화되는 형국이다. 특히 최근 전셋값은 사실상 급여소득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전세발' 가계부도까지 우려되는 실정이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무려 6차례에 걸쳐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전세난의 가장 핵심적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 '공급확대'와 '거래 활성화'를 놓치다 보니 전세가격 상승세는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한 전세대책들을 보면 저소득층 국민주택기금 지원 확대, 도시형생활주택 공급 등 지나치게 서민이나 1~2인 가구 등만을 겨냥하고 있어 대다수를 차지하는 3~4인 가구, 중산층의 전세난 해소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3~4인 가구 및 중산층 전세난을 잡지 못할 경우 900조원을 바라보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김재언 삼성증권 부동산팀장은 "현재로서는 정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택공급을 늘려 내년부터라도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가을 전국에서 입주를 앞둔 물량은 3만가구대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5만5,500여가구가 입주했던 것에 비춰볼 때 공급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이와 함께 집주인들이 임대를 월세나 반전세가 아닌 '전세'로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단순히 주택공급을 늘리고 거래를 촉진시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세 유통물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월세나 반전세가 아니라 전세로 내놓는 사람에 대해 세제지원 혜택 등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