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바잉오피스의 '머천다이저', 눈길·손길이 곧 '수출창구'

미국 유명회사의 의류 구매를 중개하고 있는 바잉오피스 M사는 요즘 걱정이 날로 늘고 있다. 미국 바이어들의 주문량이 줄면서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줄잡아 30%는 떨어졌다.이 회사 지사장 A씨는 "우리는 나은 편이다. 같은 업종에 있는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고정된 거래선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회사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말했다. 최근 내수 경기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수출 경기에는 아직까지 봄이 찾아오질 않고 있다. 냉랭한 수출 전선의 찬 바람을 바잉오피스들은 피부로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가장 큰 구매 고객인 미국이 경기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해 거래를 중단하는 경우가 늘면서 이 분야에서 내로라하던 이름있는 업체 중에 갑자기 도산을 하는 사례도 늘고있다. 한국외국기업협회가 매년 6개월마다 회원 바잉오피스를 대상으로 작성하는 회원 명단에 올해 다시 등록하지 않은 업체는 50여개가 넘는다. 예년의 경우 20여개사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김선재 한국외국기업협회 본부장은 "바잉오피스는 지난해 400여개가 활동했지만 올해는 이렇다할 활약을 하는 곳은 200여개 정도에 그치는 실정"이라며 "지사장들을 만날 때마다 수출 경기의 어려움을 듣고있다"고 전했다. 한국에 연락사무소 형태로 바잉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던 일부 해외 업체들은 아예 한국 사무소를 폐쇄하고 다른 지역에 사무소를 두기 시작했다. 또 일부 업체들 가운데는 제품 공급처를 국내에서 동남아로 옮기는 추세다. 액세서리제품을 취급하는 바잉오피스 D사는 그동안 품질이 우수한 국내 중소업체의 제품을 미국시장으로 진입시켰지만 최근 동남아산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의류ㆍ액세서리등 일부 품목의 경우 동남아ㆍ중국 등 후발국가들이 한국산의 품질수준에 바짝 다가와 있는 반면 가격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아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그동안은 품질경쟁력으로 거래선을 유지했는데 현지 경기침체로 바이어마다 품질보다 가격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바잉오피스의 위기는 국내 중소업체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바이어들이 한국산의 품질을 인정하면서도 요즘들어 부쩍 가격에 대한 불만을 높이고 있어 바잉오피스들이 국내산 공급을 포기하고 베트남이나 중국으로 공급원을 돌리기 때문이다. 특히 제품 품질력은 우수하면서 여전히 가격 경쟁력을 갖춘 공장이 많은 베트남은 바잉오피스들이 최근 가장 선호하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잉오피스를 통해 수출길을 뚫어왔던 국내 제조업체들도 죽을 맛이다. 제품을 납품하려는 업체는 많고 구매자는 적어지다 보니 가격협상에서 바잉오피스들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바잉오피스 지사장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다. 연간 수출 규모가 2억∼3억 달러에 이르는 바잉오피스에 대해서는 국내 업체들마다 출혈 경쟁을 하면서까지 거래선 유지에 안간힘을 쏟고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달 26∼28일 무역협회 주최로 열렸던 '수출구매상담회'는 국내 중소업체들이 바잉오피스를 얼마나 만나고 싶어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초 2월8일까지 참가 업체의 신청을 받기로 했지만, 참가 신청서를 내지 못한 업체들의 빗발치는 성화에 무역협회는 중소업체에만 신청 기한을 15일까지로 연기해야 했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바잉오피스들이 협상 파워를 무기로 중소 업체들의 납품 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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