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금융당국이 손을 놓고 있자니 괘씸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혼내자니 명분도 없고, 자칫 시장원리에 위배될 것 같고…." 좀처럼 가시지 않는 LIG건설의 법정관리 후폭퐁과 대기업들의 건설사 꼬리자르기. 금융 당국의 핵심 관계자는 1일 이번 사태에 대해 곤혹스러움을 표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일단은 은행권이 나서서 LIG에 대한 압박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걱정스러운 빛도 역력하다. 한마디로 당국이 딜레마에 싸여 있다. 당국뿐만 아니다. 문제의 법정관리를 담당하는 법무부 역시 제도 손질을 놓고 고민이 많다.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의 법정관리는 이래저래 금융ㆍ사법 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냐, 배임이냐=당국이 고민하는 부분은 LIG건설 법정관리 신청을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가 유발한 '꼬리자르기'로 봐야 하느냐인지 아니면 '부실 전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 것인지로 모아진다. 물론 채권자인 은행권의 입장은 전자다. 모회사인 LIG그룹의 '구두 보증'만 믿고 대출을 해줬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LIG그룹은 LIG건설을 인수하고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은행권에서 대출받았다. 은행들은 LIG건설보다는 LIG그룹이라는 이름값을 높게 평가해 선뜻 대출에 응했다. 하지만 그룹 측은 건설경기 부진으로 건설사업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LIG건설의 처리를 법원에 떠넘겨 버렸다. 이 과정에서 채권자인 은행 측에는 사전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탓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고민의 밑바탕에는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당시 그룹사들은 계열사 간 채무보증과 내부거래를 통해 사업확장을 꾀하다 동반 부실이라는 쓴 경험을 맛보았다. 당국은 대우 등 부실기업은 물론 삼성을 비롯한 5대그룹 구조조정을 하면서 가장 먼저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끊는 작업을 했다. 이처럼 어렵게 구조조정의 줄기를 잡은 상황에서 LIG그룹 측에 회생가능성이 불투명한 LIG건설에 무턱대고 돈을 지원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특히 LIG그룹의 다른 자회사를 통해 LIG건설을 지원할 경우 형사상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LIG그룹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만일 당국이 그룹 측에 LIG건설 지원을 강요한다면 "외환위기 이전 시절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라는 것이다. ◇법정관리 제도 강화하자니 기업구조조정 차질 우려=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정관리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LIG나 효성 등처럼 대기업들이 꼬리자르기를 하는 것을 최대한 막고 설령 법정관리를 하더라도 대주주의 책임을 보다 엄격하게 묻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적 부분에 들어가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법정관리 절차를 엄격하게 하려면 도산절차에서 대주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이에 대해 난색을 표시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정관리를 남용하는 기준자체가 모호하고 가뜩이나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꺼리는 마당에 대주주의 책임까지 강화하면 도산절차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마지막 회생을 위한 장치가 법정관리인데 이마저 선택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고민하는 정부, 은행 통해 우회 압박…CP 문제는 엄격 책임 추궁=그렇다고 마냥 팔짱을 끼고 있을 수 많은 없다는 게 당국의 고민이다. 자칫 LIG 사태로 은행들이 건설업체 여신을 모두 끊을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업계가 극도로 침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국이 전면에 나설 수도 없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국은 은행을 통해 우회적으로 실마리를 풀고 있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매듭을 푸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이 그룹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순진한 대출관행을 뜯어고쳐는 작업에 들어간 것도 같은 줄기다. 다만 문제가 된 LIG건설의 기업어음(CP) 발행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CP 발행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발행 증권사든, 발행 회사든 책임 소재를 확실하게 가린 뒤 관련 법규에 따라 처리를 하겠다는 의지다. 물론 투자자의 책임도 얘기하고 있다. 모그룹만 믿고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담보도 없는 CP를 사들인 투자자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도덕책 책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시장원리"라고 말했다.